창세기강해

창세기32장21-32

푸른 섬 2007. 7. 16. 12:39
 

축복

창세기32장21-32

이 땅에 사는 사람치고 제일 좋아 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아마 축복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축복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전을 찾아 보니 축복이라는 뜻은 앞으로의 행복을 빌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반대 말은 재앙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재앙을 싫어 합니다.

축복을 좋아 합니다.


왜 재앙이 싫습니까?

싫으니 싫은 것이겠죠.

어느 누가 재앙을 좋아하겠습니까?


이왕이면 축복된 삶을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중에 축복된 삶을 살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꼬이고, 집안이 꼬이고, 자식의 삶이 꼬인다면 그 인생이 어떠하겠습니까?

축복받은 삶일까요 저주 받은 삶일까요?

아마 저주받은 삶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축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오는 두려움 속에서 홀로 남았습니다. 그가 기도하려고 남았는지, 아니면 홀로 생각을 곰곰이 하려고 남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홀로 남았을 때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을 이기려고 씨름을 합니다.

격렬한 몸싸움을 합니다. 야곱은 결코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자 상대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쳐 버립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냥 야곱이 힘이 세구나. 천하장사구나 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30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야곱과 씨름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야곱보다 힘이 약하다는 말이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보다 힘이 세고 말입니다.


이게 말이 안되지요.

그러니 야곱을 이기지 못했다는 말을 그냥 쉽게 힘이 세다라는 식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야곱의 이런 모습은 그가 살아온 방식을 살펴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기지 못하셨다는 것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한번도 져 본적이 없습니다.


비록 자신이 속은 적은 있지만 그 속음을 그 배 이상으로 갚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승리로 가져 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은 항상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언제나 자신과 함께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것 같았습니다.

주변의 인물도 그러하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얻은 모든 것은 곧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이유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홀로 남았을때 상대했던 분이 누군고 하면 하나님이셨습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야곱은 하나님과도 씨름해서 이겼습니다. 그는 지고는 못배기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잔머리를 굴려 형의 마음을 누그려뜨려 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또 얼마나 청산유수입니까?

하나님 언약의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누구와 씨름하고 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야곱이 살아온 인생이 어떠한 인생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씨름하던 사고방식으로 살아온 그런 인생입니다.

야곱은 이런 식으로 살아 오면서 얻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 여겼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행동해온 모든 것들이, 그리고 그가 생각하던 축복이 과연 축복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근거하면 야곱의 행동은 결코 하나님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 동안 야곱과 함께 하시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고는 못사는 야곱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베푸심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긍휼이라는 것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무조건 이기는 것만이 소유의 넉넉함만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야곱앞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지도는 못배기는 야곱이 한판 씨름을 벌이지요.

결국 야곱이 이깁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쳐 버립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야곱이라는 인간은 죽지 않으면 안될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환도뼈를 쳐 버렸다는 것은 야곱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부정하는 하나님의 행동이십니다.


힘을 의지하여 살아온 야곱에게 힘의 근원을 제거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32장1,2절을 봅시다.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나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을 때 왜 하나님의 군대라고 명명합니까?


그 하나님의 사자들이 자신을 형에서로부터 지켜 주실 것이라는 이유에서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먼저 누구를 공격합니까?

먼저 야곱을 공격합니다.


야곱의 착각이었습니다.

공격받을 자는 다름 아닌 야곱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떠나려고 하십니다.

그러자 야곱이 울며 간구합니다.

호세아12장4절을 보면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참으로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이겼는데 오히려 울며 그에게 간구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겼는데 왜 울며 간구합니까?

그 이유는 환도뼈를 한 대 얻어 맞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이제 지금까지 자신이 의지해온 힘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기고도 울며 간구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 사람을 붙들고 울며 간구합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제는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울며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제야 제대로된 기도, 진실된 기도가 나옵니다.


지금까지 야곱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이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그 힘을 지지 받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죠.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울며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축복이 혹시 야곱의 환도뼈가 다시 낫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야곱의 울며 간구하는 내용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울며 간구하는 야곱에게 축복을 내리십니다.

그 축복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돈 많이 준다. 건강 준다. 사업성공한다. 자식 잘 된다 이런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는 축복입니다.

이것이 무슨 축복입니까?

육에 속한 사람은 이것을 결코 축복으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야곱적인 사고방식으로 축복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십니다.

야곱의 이름이 무슨 뜻입니까?

야곱의 이름의 뜻을 알려면 야곱의 지금까지의 삶을 보면 됩니다.


지고는 못사는 야곱 아닙니까?

그를 이스라엘로 바꾸십니다.

이스라엘은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이게 왜 축복입니까?

이스라엘이라는 뜻이 좀 복잡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겼다는 말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해석하면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긴자가 누구입니까?

야곱이지요. 이렇게 이기려고 하는 자 지고는 못 배기는 자 야곱에게 야곱과 비슷한 의미의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의 삶을 보게 되면, 어떤 삶이 펼쳐지는고 하면, 자신의 죄악을 온 몸에 품고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긍휼로 자신들이 생존할 뿐만 아니라, 이방신들을 이기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30절에서 브니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니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이것이 바로 장차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과 단순히 대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한판 붙어 이긴 자를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생명을 보전해 주신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이런 하나님의 긍휼을 잔뜩 품고 삶을 살게 됩니다.


31절을 보면 해가 돋았고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고 합니다.

너무나 절묘한 대조아닙니까?


해는 돋고 환도뼈로 인해 저는 모습.

지금까지의 야곱이라면 해는 돋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야곱을 떠올리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환도뼈로 인해 저는 모습이야 말로 제대로된 삶, 새로운 삶, 즉 축복받은 삶이지요.


축복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야곱이 절지 않고 축복받으면 안되는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절지 않으면 축복이 안 됩니다.

반드시 절어야만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라는 것은 반드시 인간의 죄를 고발하고 그 죄 문제를 친히 처리하시고 주시는 축복입니다.


성도는 복을 받았습니다.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야곱과 같은 축복이지요.


그러면 성도는 어떤 삶을 살까요?

이스라엘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야곱같은 삶을 살게 되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이스라엘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즉 자신의 죄를 아는 인간, 즉 나는 야곱같은 자입니다. 지고는 못 살고, 많이 소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 여기고, 그 복을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죄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조차도 내 편이라 생각하여 그 이름을 내 마음대로 이용한 인생입니다.


이런 죄인을 십자가의 피로 용서하시고 구원하심을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힘으로, 가지는 것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즉 사랑으로, 십자가 복음으로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삶을 누가 살았습니까?

사도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면 이기는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그것은 곧 복음 때문에 고난받는 것이 이기는 삶, 승리하는 삶, 축복받은 삶입니다.

요한복음16장3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이 삶은 성도에게 정해진 삶입니다.

주님 안에서 죄 용서함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저주에서 놓임 받아  참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할 것입니다. 해가 떠 오르고 환도뼈로 인해 저는 모습이 바로 오늘을 사는 주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축복을 받은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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