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

창세기35장1-7

푸른 섬 2007. 7. 16. 12:40
 

벧엘의 전능하신 하나님

창세기35장1-7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야곱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야곱이 서원한 것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자신 만만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다라고 하실 분도 있습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밥을 먹기 위해 요리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요리를 하지 않고 기도만 하면 밥이 떡 나옵니까?

아니면 우리가 직장생활을 해서 월급을 받지 않습니까?


내가 땀 흘리지 않으면 어떻게 돈을 벌수 있습니까?


전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직접 전도하지 않으면 누가 전도합니까?

내가 신앙생활을 해야지 누가 내 신앙생활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야곱이 벧엘로 돌아오게 됩니다.

벧엘은 어떤곳입니까?

창세기28장에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으로 도망가는 중, 하룻밤 잠을 잔 곳이지요. 이곳에서 꿈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야곱은 꿈에서 깨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원래지명은 루스입니다.


야곱은 28장20절-22절에서 이렇게 서원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정말 자신 만만해 졌습니다. 자신이 지금 가는 길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속에서 이런 서원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서원의 내용을 잘 보면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오면” 이라고 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는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자신의 편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도 속에는 무슨 의미가 들어 있습니까?

자신이 평안히 돌아오지 못한다면 결코 자신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수도 없고, 십분의 일도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반드시 평안히 돌아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중심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야곱,


지금 자신이 이렇게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야 하는 이유가 자신의 속임과 엄마 리브가와 자신이 함께 형과 아버지 이삭을 속인 댓가가 아닙니까?


그런데 자신이 이것 조차도 하나님께서 지지해 주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창세기35장3절을 보면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환난이라는 표현을 보면 참 재미 있지요.

자신의 속임으로 발생한 사실을 마치 자신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해서 자신이 당하는 환난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1절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서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게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참으로 희한한 일이지요.

야곱이 그렇게 자신 만만하게 하나님께 서원했는데, 자신이 충분이 곧장 벧엘로 갈 수 있었습니다.

형 에서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깔끔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야곱을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33장18절을 보면 “야곱이 밧단 아름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백개로 사고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 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


야곱은 세겜 성에서 평안히 거할 수 있게 됨으로 그곳에 그냥 정착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땅까지 사들여 그곳에 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을 이스라엘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서원을 잊어버렸습니다. 평안히 거하게 되니 이곳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을 거하게 하신 땅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은 일백개로 땅을 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은 이후 실제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 언약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죄악을 심판하고 그곳에 들어가 살 땅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사라를 g헷족속의 땅을 사서  장사한 것과 같은 차원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창세기23장에서 아브라함은 이곳을 자신의 소유 매장지로 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야곱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일하시는 방식을 보면 결코 야곱중심으로 일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딸디나의 강간당하는 사건으로 이해 야곱은 위기를 맞습니다.

지금까지는 별 문제 없이 잘 지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뒤 내용을 보게 되면 비록 일부분의 땅은 자신의 소유로 삼았지만 주변 족속들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혀 야곱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한 대 얻어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야곱, 지고는 못하는 야곱이 이런 모습이 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야곱을 욕할 수 도 있습니다마는 야곱은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잃어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이런 모습중에 딸 디나가 강간당하였고, 이 일로 인해 자신의 자녀들은 할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세겜과 그 아비 하몰을 속여 세겜성 남자를 다 죽여 버리고 노략합니다.


세겜성 남자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아이들도 사로잡아 옵니다.


그러자 야곱이 뭐라고 합니까?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 즉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땅을 자기 소유로 구입한 믿음과 지금의 말이 어떻습니까?

정반대지요.


하나님의 전쟁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물론 시므온과 레위가 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오히려 적들 앞에서 자신들이 할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들이 쳐 들어오면 몰살당해야 하는 위험에 자신들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여호와 전쟁은 결코 사람의 꽤로 승리하는 전쟁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 자신의 복수를 하는 전쟁이 아닙니다.

어찌되었던 하나님께서는 시므온과 레위, 그리도 그 형제들을 통해서 장차 있을 하나님의 전쟁이 어떠한 전쟁으로 펼쳐져야 하는 것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물론 시므온과 레위의 방식의 정반대의 방식입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이들은 위험에 직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으라고 말입니다.


2절을 봅시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벌써 가나안 문화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섬기던 우상을 섬기는 상황입니다.


물론 이들이 잡아 온 세겜의 아이들과 여자들이 이것들을 함께 갖고 왔다라고 볼수 있지만 이미 야곱의 아들들이 이들과 동화되어 버린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야곱이 이방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약속의 땅에 거하면서 결국은 그들의 죄와 동화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고 딸 디나의 사건과 시므온과 레위의 행동이 이들 문화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이들은 야곱의 말을 듣고 그들 손에 있는 모든 이방신상과 귀고리를 야곱에게 주었고 야곱은 이것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아래 묻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떠납니다.


세겜성 주위 성들이 이미 이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야곱의 말에 의하면 세겜성 사람들과 주변 족속들이 아주 우호적 관계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 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벧엘로 돌아 옵니다. 그가 서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서원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이렇게 오묘합니다.

자신의 서원조차 자신이 지킬 수 없는 야곱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야곱 자신이 이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아들들의 행위를 통해 인간의 죄는 죄대로 밝히시고 그들이 부지중에 행하는 행동을 통해 장차 하나님께서 언약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가를 보여 주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하신 언약은 결코 인간이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십니다.


그래서 야곱은 엘벧엘, 즉 벧엘의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오직 주님 되신 예수님이 이루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되신 예수님이 모든 말씀을 이루심을 믿고 감사함으로 담대함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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