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

창세기40장5-23

푸른 섬 2007. 7. 16. 12:43
 

심판주 되신 주님 예수

창세기40장5-23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항상 어떤 생각을 가지는고 하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이 말은 그냥 장소적 의미라기 보다는 자신이 가진 재산이나 건강이나 가족이나 권력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간증을 들어 보거나, 아니면 책을 보면 모두가 다 어떤 식인고 하면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는데 그 상황을 주께서 해결해 주셨다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식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당장 여러분들은 이렇게 답변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식으로 말하지 않는가?


요셉을 보라, 나중에 총리가 되지 않는가?

그러니 그가 고난을 당했지만 결국 많은 재물과 권력을 얻지 않았는가?

성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러나 여러분들이 만일 이런식으로 말한다면 제가 한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주가 되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땅의 일들이 술술 잘 풀린 사람들이 아닙니다.

정말 요셉처럼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성령을 받게 되니 그들은 고난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요한복음15장 18-21절을 봅시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이 말씀을 누가 하셨습니까?

주님되신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주님의 영을 받은 제자들과 성도들은 주님의 증인으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런 삶 때문에 성도의 인생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주님이시라는 분이 어떤 분이시길래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 보겠습니다.

요셉은 지금 모함을 받아 왕의 죄수들이 갇히는 감옥에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죄수를 요셉이 관리하게 됩니다.


이런 중 애굽왕의 술맡은 자와 떡 맡은 자가 감옥에 들어 옵니다. 요셉이 이들을 시종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꿈을 꾸었습니다.

하룻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의 내용이 달랐습니다.

무언가 의미 있는 꿈을 꾸었는데 도대체 이 꿈을 해석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근심 빛이 가득했습니다.


이것에 대해 요셉이 이렇게 말합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요셉은 이들의 꿈을 해석합니다.

술 맡은 자는 사흘 안에 전직을 회복할 것이라는 꿈이라고 하면서 전직회복이 되면 자신을 건져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감옥이 결코 기쁜 곳이 아니지요. 아무리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셔도 감옥은 감옥일 뿐입니다.


그러자 떡 맡은 자가 꿈 해석이 길함을 보고 자신의 꿈도 이야기 합니다.

떡 맡은 자는 사흘 안에 당신의 머리를 베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바로의 탄일에 이 일은 그대로 이루어지지만 술 맡은 자는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어 버립니다.


요셉은 지금 왜 감옥에 갇혔습니까?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갇혔지요. 자신의 의지는 감옥에서 나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해석하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꿈을 해석해서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꿈꾸는 자에서 꿈을 해석하는 자로 아주 재미 있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꿈을 해석해서 감옥에서 빠져 나가라고 꿈해석의 능력을 요셉에게 주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감옥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요셉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와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야곱은 철저하게 자신의 의지와 뜻을 따라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증거합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어떤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합니까?

바로 심판주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장차 오실 약속의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감옥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술 맡은 자와 떡 맡은 자들의 꿈의 해석이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요셉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과정이 아닙니다.


떡 맡은 자와 술 맡은 자가 꿈을 꾸었는데 꿈을 누가 꾸게 하셨을까요?

요셉의 말에 의하면 꿈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요셉이 꾼 꿈을 생각해보면 꿈을 꾸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꿈의 특수상황입니다.


우리들이 꾸는 개꿈을 여기에 갖다 대지 마십시요.

특별이 술 맡은 자와 떡 맡은 자를 감옥에 있는 요셉에게 투입시켜서 요셉을 통해 세상의 심판주가 누구신가를 증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요셉이지요.

요셉의 말대로 이들은 하나는 복직되고 하나는 죽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파악됩니까?

장차 요셉이 주가 됩니다.

형제들의 주가 되지요. 죽이고 살리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주가 된 요셉에게 있지요.


요셉은 자신이 감옥에서 꿈을 해석함으로 장차오실 메시야가 어떤 분이신가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은 감옥에서 고난받으면서 말입니다.

그가 나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은 결코 감옥생활이 평안한 삶을 아니라는 것이지요.


요셉이 감옥에서 고난받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장차오실 언약의 자손인 예수님이 바로 심판 주로써, 살리고 죽이시는 권세를 갖고 오시는 분을 증거하기위해 그는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앞서 제가 서론에서 요한복음15장을 말씀드렸습니다.

성도들의 삶이 어떤 삶인지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주님되심을 증거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닙니까?

예수님이 주님이 되셨다는 것을 전하는데 왜 사람들이 미워할까 말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이 주님되시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시편2편1-3절을 봅시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꼬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바로 이 이유입니다.


독립입니다. 자유입니다. 자신들은 결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든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고 삶과 죽음은 자신의 결정에 달렸는데, 무슨 예수님이 주가 되셔서 천국에 들어갈 자로 지옥 보낼 자를 갈라내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증거하는 성도들도 미워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성령받은 성도라면 당연히 어떤 인생으로 인도함을 받는고 하면 반드시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인생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세상으로부터 미움받고 고난받고 핍박받게 됩니다.


요셉의 삶이 예수님을 통해 완성 되었고, 예수님의 삶이 우리 속에서 다시 활동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얻습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잘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당신이 믿고 싶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고 얻고 싶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고유권한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더 나아가 당신들이 하는 어떤 것도 죄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셨다는 것은 우리가 하는 어떤 것도 죄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미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자신은 도대체 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지요.


당신의 기도 전도, 봉사, 헌금 모든 것들이 주님의 은혜니, 당신은 자랑하고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해 보세요.


아마 돌이 날라와도 돌이 날라올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는 자신이 원치 않는 곳으로 갑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자신은 자신이 원해서 이곳으로 왔다라고 하지만 그것조차도 주께서 배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어디에 가든지 어디에 있든지 어떤 형편에 놓이든지,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병들었든지, 건강하든지 상관없이 모든 것을 주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의 주되심을 증거하라고 하십니다.

성도는 자신의 형편에 상관없이 오직 예수님만 주님이심을 증거하는 자입니다.


서론에서 예를 든 간증하는 사람들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죽더라도 이미 주님으로부터 영생 받은 몸이니 더 이상 두려움 없습니다.


물론 요셉처럼 꺼내 달라고는 하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끝까지 자신의 주되심을 증거하시기 위해서 성도들을 밀어 붙이십니다.

그 밀어 붙이심이 죽음이 될지, 아닐지, 부자가 될지, 가난한 자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된 성도들이 어떤 형편에 있든지 반드시 자신의 주되심을 증거케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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