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

심판제거

푸른 섬 2008. 12. 8. 21:01

심판제거

사무엘25장1-13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지난주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원수 갚는 날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니 무엇까지 제거해 버립니까?

원수 갚는 날을 제거해 버립니다.


어차피 원수 갚는 날은 눈에 보이지 않고 오직 사람 사는 세상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지요.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나발과 아비가일, 그리고 다윗이 등장합니다.

나발은  엄청나게 부자입니다. 양이 삼천, 염소가 일천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완고하고 행사가 악한 사람입니다.


그에 반해 그의 부인 아비가일은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 다운 사람입니다.

마치 잠언서에 나오는 지혜로운 여인 같습니다.


다윗이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어서 그의 소년 열명을 나발에게 보냅니다.

다윗의 이름으로 문안하고 평강을 빕니다.

그리고는 다윗이 이전 나발의 양털깍는 자들을 보호해 준 사실을 주지시켜 주면서 나발의 손에 있는 좋은 것을 좀 내어 놓으라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그냥 돌봐 주었으면 되었지 왜 그 댓가를 요구합니까?

그럴 것 같았으면 그냥 그곳에서 빼앗아 버리지?


이것이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전혀 다른 부분입니다.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뭐라고 합니가?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다윗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죠.

뿐만 아니라 다윗을 따르는 자들을 향해서 지금 비꼬는 말입니다.

11절을 보세요.

“내가 어찌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아깝다는 것이죠.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이 어떻게 행동을 취합니까?

칼을 차고 이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 일을 누가 알게 됩니까?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아비가일이 급히 음식을 준비하여 다윗에게 나아갑니다.

다윗은 이렇게 생각중입니다.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 자라고 말입니다.


결국 아비가일로 인해 나발은 죽지 않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셔서 죽이셨습니다.


보세요 . 하나님께서 직접죽이시지 않습니까?

다윗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일치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발의 악으로 다윗의 선을 갚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나발이 행동한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입니까?


잠시 재산을 보호받았다고 해서 꼭 그 은혜를 갚아야 합니까?

그리고 그 은혜를 갚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죽어야 되는 일일까요?


우리가 세상 살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면 다 하나님께 벌을 받아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죠.


그런데 꼭 한분에게는 그러하다는 사실입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다윗입니까?


다윗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복과 저주가 갈라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살것이냐, 죽을 것이냐를 보여주시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이런 분임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만을 유일한 구원자로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이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나발이 죽은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왜 그렇습니까라고 물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그러한 방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을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다라”

이 말씀이 세상사람들이 듣기에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왜 꼭 예수님 이름이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이름으로도 구원이 되고, 자신의 이름으로도 구원이 된자도 주장합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기준이 바로 구원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지요.


얼마전 한국에서 부총리를 지낸 사람이 책을 냈습니다.

예수 없는 예수 교회.

우리가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죠.


그런데 이 사람에겐 무엇이 없는 고 하면 예수님의 피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이야기 해버리면 그가 주장하는 것이 다 엉터리가 되죠.


왼 빰을 때리면 오른빰도 돌려 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참 기독교지 남을 배척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이야 맞죠.


기독교인이 남을 배척하는 것은 안됩니다.

이유는 한가지죠.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본인 스스로 배척한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들은 자들이 화가 나서 예수님을 배척하죠.


사도행전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자가 믿지 않는 자들과 등지고 삽니까?

그래서 수도원생활을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더 열심을 내어 복음을 전하죠.

그렇게 하니 자동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화가 나고 분노가 나서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죽이고, 가두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가장 화나는 것이 바로 이 것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많나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그래서 나발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예수가 누구냐라고 말입니다.

예수가 뭔데 자신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냐?


차라리 자신의 삶을 배우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 모를까?


이것이 인간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배워서 그렇고 살아서 구원을 얻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은 인간들에겐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그냥 영원히 지속될 것 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주님 되신 예수님의 피를 기준으로 심판을 하십니다.

물론 지금도 심판 중이신데 인간들은 자신의 몸으로 느끼지 못하니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몸으로 느끼는 심판이 반드시 있습니다.

죽은 자도 살아나서 심판받고, 살아있는자도 심판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영생으로 믿지 않는 자들은 지옥으로 가야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이것이 너무나 간단해서 이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믿지 않으면 지옥.


이것이 죽어도 듣기 싫습니다.

다윗이 뭔데, 이새의 아들이 누군데.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자신의 고된 삶을 살기 싫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얼핏보면 맞는 말 처럼 들리지요.

현실 도피를 위해.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이 현실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치열한 삶의 정황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삶속에서 살았고,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그냥 공중에 붕 떠서 사는 삶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그 삶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예수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리고 심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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