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

강해 5

푸른 섬 2008. 1. 22. 00:00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상2장27-36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에 있어서 인간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항상 자신의 기준으로 이해합니다.


그 기준은 항상 자기 중심적인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항상 자기를 중심으로 그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하나님의 사람의 이름이 없습니다.


이것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름없는 사람의 등장.


우리는 이런 사실을 대하면 못견딥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우리의 이름이 기록에 남기를 바랍니다.


무언가 세상에서 흔적을 남기기를 바라지요.

세상에 살면서  한 획을 긋고 살아야 제대로 살았다라고 하지 이름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나 허무한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예배당이 생긴 지 수 십 년이 되든지, 아니면 예배당을 새로 지으면 그곳에 이름을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더욱 깜짝 놀란 일이 있습니다.

물론 별로 놀랄일도 아니겠지만.


예배당을 짓는데 헌금을 많이 하면 헌금 많이 한 순서로 예배당 머릿돌에 새겨 준다는 것입니다.


마치 초등학교 같은 곳에 가면 돈을 내서 무엇을 하면 비석을 세워 이름을 세겨주는 것과 같지요.


이게 무엇이 그리 잘못되었느냐 말씀하실지 모르지만,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결코 이 땅에 인간의 이름이 남겨지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일을 해 놓고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다는 것은, 자신의 행적을 길이 길이 남기려는 의도는 주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전혀 모르는 행위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후대가 또 선배 인간들의 이름을 남기려고 하는 짓도 마찬가지이지요.


헌금을 해도 자신의 이름이 주보에 실리면 너무나 흐뭇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보에 자신의 이름이 실리는 즐거움으로 주일마다 예배당에 갑니다.


그런데 만일 주보에 이름을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헌금이 확 줄어 버립니다.


목사들이 이것을 너무나 잘 이용하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름없는 사람의 등장은 우리를 상당히 불쾌하게 만듭니다.

왜 이름이 없느냐 말입니다.


지금 엘리의 가문, 즉 누구의 가문입니까?

레위 사람 중 아론의 가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세우신 대제사장 가문입니다.


27, 28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제사장 가문의 출발점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 여호와께서 제사장을 삼으셨다고 합니다.

종살이 하든 인생이었지요.


이런 인생을 제사장으로 삼아 놓았더니 무슨 짓을 합니까?

29절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이들은 본래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오히려 날마다 자신이 죽음으로 자신들이 본래 죄의 종이었고, 하나님의 희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증거하는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위해 살아갑니다.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 자기 자신들을 위해  세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은 불변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제사장 직무는 영원할 것이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으실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바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으니 결단코 나는 버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살던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알미니안 주의 자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알미니안 주의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인간 중심, 자기 구원 중심이 아닙니까?


개혁주의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똑 같습니다.

어찌되었든지 하나님의 이름, 주님의 이름이 증거되는 인생이 아니라 보장 받은 구원으로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시지요.

30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네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전엔 분명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않으신다고 하셔놓고 이제 와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경멸히 여긴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랫다 저랫다 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오직 자신의 이름을 위해 일하십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적인 야곱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는 자들, 자신의 가문을 세워가는 자들은 그들이 비록 제사장 가문일지라도  끊어 버립니다.

31절 후반부를 보면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하나님과 다르지요.

32,33.34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네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한번 말씀하셨으면 지키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럴수 있느냐고 따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름 중심으로 말씀하시고 일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한 제사장을 일으키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가 다 용서 되었으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우리의 구원은 철수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틀린 말씀입니다.

이 말이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고, 자기 중심으로 해석한다면 이 말은 오히려 주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엘리가문과 다를 바 없는 자가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말씀으로 받고 살아간다면 오히려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는 인생,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인생으로 살아 갈 것입니다.


이런 인생은 자신의 이름이 남겨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의 등장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져도 두말 않고 살아가는 참 성도들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자신을 존중하는 자를 존중히 여기며 자신을 멸시하는 자는 경멸히 여기신다는 사실말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하나님이라서 구약시대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약시대는 다르지 않느냐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이런 사고방식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멸시하고 조롱하며 자신의 이익의 재료로 삼는 사고방식이지요.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자신의 살과 피로 구원하신 이유는 오지기 자신의 이름을 증거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이름을 증거하려면 엘리의 가문처럼 자신의 가문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라져 가는 인생이야 말로 예수님의 이름을 제대로 증거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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