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

강해36

푸른 섬 2008. 8. 2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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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상18장1-16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보면 우리 인간을 너무나 열받게 하는 방식입니다.

성경을 한번 읽어보세요.

읽어보면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이렇게 느낄 것입니다.

무슨 이런 하나님이 다 있어라고 말입니다.

창세기부터 읽어 가노라면 하나님을 믿어야하겠다는 마음보다 오히려 이런 하나님이라면 나는 믿지 않겠어라는 마음을 들게 합니다.

에덴동산, 완벽한 신이 만든 에덴동산. 이곳에서 어떻게 뱀이 활동할 수 있는가입니다.

사단이 어떻게 활동할수 있는가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막상 성경을 제대로 읽어가게 되면 구원은 커녕 하나님이고 예수님이고 다 꼴도 보기 싫습니다.

제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성경을 제대로 한번 읽어 보십시오.

성경 말씀이 우리가 듣기에 정말 꿀송이 처럼 달게 들립니까?

물론 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만 그렇죠.

그러나 성령받지 못한 사람은 성경을 보면 볼수록 적개심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좀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이성으로 성경을 이해해 보니 이런 엉터리 같은 이야기가 어디 있는가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우리를 화나게 하는 말씀이 줄줄줄 나오는데 그 중에 한 본문을 보겠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입니다.

19절에서 31절입니다. 한번 읽어 봅시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옷과 고운 베웃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애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 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거지 나사로는 천국가고 부자는 지옥갔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자는 살았을때 잘먹고 잘살았다는 이유고 거지는 거지 생활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죠.

겉으로 보기에 그들의 삶은 차이가 없습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살았고, 거지는 거지 나사로대로의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왜 부자는 지옥갔습니까?

이유는 예수님 믿지 않아서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전한 분은 예수님입니다.

잘먹고 잘 살아도 예수님 믿지 않으면 지옥갑니다.

그러나 거지로 평생 얻어 먹고 개의 친구가 되어 살아도 예수님 믿으면 천국갑니다.

무슨 이런 이야기가 다 있습니까?

여러분 이런 말씀 보면 열받지 않습니까?

부자가 예수님믿고 천국갔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거지가 거지로 살다가 천국갔다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게 되면 인간의 심사를 뒤틀리게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믿고 거지로 살다가 천국가고 싶습니까 아니면 부자로 천국가고 싶습니까?

그야 당연히 부자로 천국가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마음을 딱 아시고 거지 나사로는 천국, 부자는 지옥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우리의 마음이 무엇에 사로 잡혀 있는지를 고발하시는 것이지요.

물론 예수님 당시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을 공격하는 말씀입니다마는 그 바리새인이 여기 앉아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바리새인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여기 앉아 있는 우리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지옥 갈 자들은 지옥가라는 말씀입니다.

제 말이 좀 심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본문을 갖고 사람들에게 전도해 보세요.

누가 예수님 믿겠습니까?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있습니까?

이런 말씀을 교회다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그야 성경이야기이고 나는 나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거지는 예수님을 믿고 천국갔지만 나는 예수믿고 부자로 천국가겠다는 것이지요.

이런 자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라는 말씀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하시는지 도무지 모릅니다.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면서 속으로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 오릅니다.

거지로 천국간다면 그것보다 허무한 인생이 어디 있을까라고 말입니다.

길거리에 거지를 볼수 있죠.

그들이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소망이 있어 보입니까?

가까이하기도 싫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천국간다. 말도 안되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렇게 되면 십자가 앞으로 나가야 할 터인데 이런 인간은 부자되고 천국가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를 화나게 하면서 다가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 자기 백성을 십자가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사울과 다윗.

사울 앞에 다윗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사울의 모습이 이렇게 악한 모습을 보였을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모르겠다고요.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하죠.

저런 인간 안 만났다면 내 꼴이 이 모양 이 꼴이 아닐텐데.

이 말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들이 담깁니다.

그 중에 하나는 내가 저놈 때문에, 저사람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왜 하필 저런 인간을 만나게 하셔서 내 모습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고 살아가게 될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생각 해 보지 않습니까?

내 성질이 확 드러날 때, 내 분노가 확 드러날 때 저런 인간 안 만났으면 이러지 않았을텐데.

그러면 나의 고상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 유지하려면 산속에 들어가면 됩니다. 도를 닦으면 됩니다.

무슨 말인냐고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사람이 어떤 사건을 접하지 않으면 자신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상황이 닥치게 되면 인간은 자신 속에 있는 것들이 솔솔 흘러 나옵니다.

사울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 앞에 배치하십니다.

다윗이 승승 장구하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인기를 누리게 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사울속에 뭐가 들었는지 두더지 게임처럼 쏙쏙 올라 옵니다.

그것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윗을 죽이고 싶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한국 텔레비전에서 최강칠우라는 드러마를 했는데 거기에 보면 인조왕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들도 죽이고 손자도 무참히 죽이는 장면이 나왔지요.

우리가 그런 자리 있지 않아 인조 왕을 욕할지 모르지만 우리도 그런 자리 가면 그런 맘이 쏙쏙 흘러 나올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 사울앞에 다윗을 두셨을까요?

그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인간의 죄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왕을 구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왕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시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 가운데 이런 다윗과 같은 사람을 계속해서 붙여 놓으십니다.

누구일까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옆에 딱 짝지어 놓으셔서 항상 우리를 어디로 몰아 가실까요?

물론 수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함께 짝지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십자가지신 예수님만 매달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제거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제거할수는 없고 나의 욕망과 죄악을 불러 일으키는 주변인들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참 성도에게는 이런 자들을 붙여 주셔서 왜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아니면 안되는 것을 삶의 자욱 자욱마다 흔적을 남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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