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강해

강해10

푸른 섬 2008. 9. 10. 10:44

다 알고도

단5:1-31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벨사살 왕을 보게 되면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됩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참으로 생각이 깊지 못한 사람이다 등등의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닙니까?


다니엘의 말을 들어보게 되면 벨사살왕은 선친에게 일어난 일을 완전히 다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주님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느부갓네살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벨사살왕은 어떻게 합니까?


23절을 보세요.

“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위에 있다는 것을 과시합니다. 특히 왕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귀인들, 왕후들, 빈궁들이 하나님 전의 기명으로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우상을 찬양합니다.


우상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1:21-23절을 봅시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사야42:17절을 보게 되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조각한 우상을 의뢰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


우상의 특징은 인간들을 위한 것에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을 징계하신 하나님이야 눈에 보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이야 의지할 수 없는 하나님이 아닙니까?

오히려 어쩌면 그 하나님이 알려 주신 금, 은, 동, 철, 흙의 신상이야 말로 자신들의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벨사살왕이 신상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의 나라가 영구할 것이라는 소망을 담아 자신들이 만든 신상에게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 느부갓네살왕이 이렇게 까불다가 하나님께 혼쭐이 난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불에 집어 던져 넣었다고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그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는 신들의 아들과 같은 분이 그들과 함께 계심도 목격했습니다.


이 뿐입니까?

느부갓네살왕이 교만하여, 자신이 온 땅의 주인인 냥 행세하다가 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일곱 때를 지내서야 총명이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사실을 벨사살왕이 몰랐을까요?

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또 이런 짓을 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제가 서두에 벨사살왕은 생각이 깊지 못한 자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자인가라는 의문을 생각해 본 것입니다.


이제부터 오늘 본문이 우리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벨사살왕이 어리석다 생각이 깊지 못하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오늘 본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다니엘서를 읽어보게 되면 사실 다니엘 4장에서7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역사적 순서로는 맞습니다.

7장 1절을 보게 되면 벨사살 원년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5장은 벨사살왕의 통치 말년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왜 성경을 정리할 때, 하나님께서 4장 다음에 7장을 배치하지 않으시고, 5장을 두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일곱 때의 의미를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라고 생각됩니다.


일곱 때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짐승처럼, 짐승이 왕노릇하는 시대가 아닙니까?


느부갓네살왕을 이어 왕이 된 벨사살왕이 어떤 모습을 보입니까?

물론 느부갓네살왕과 벨사살 왕 사이에 몇 명의 왕이 들어 있지만, 이것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끼인 왕들도 여전히 이들 왕의 모습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벨사살왕이 지금 왕권을 잡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재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이 뿐 아니지요.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천한 자를 높이시는, 친히 자신의 주권을 행세하시는 분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 구체적으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다니엘을 통해서 친히 자신이 주님이심을 드러내신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벨사살왕은 어떻게 합니까?

이 모든 것들을 깡그리 무시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온 만유의 주재인 냥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감이 잡히십니까?

짐승이라는 자가 어떤 정체를 띠고 있는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입니다.

주님을 무시한다. 물론 이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항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도 어떻게 합니까?


자신이 만유의 주재인 냥 행세를 합니다.

얼마나 괴상한 일입니까?


여러분 보시기에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온 만유의 주님이심을 다 알고도 자신이 세상의 주재인 냥 행세하며 자신이 만든 우상을 찬양하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짐승의 정체는 단순히 하나님의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알고 대적합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멸시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전 기명을 술 마시는 것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모독을 주는 행위가 아닙니까?



여러분 짐승의 나라의 특징이 그렇습니다.

다 알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주님을 멸시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순순히 다니엘에게 자주 옷을 입히고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 삼습니다.

너무나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니엘의 해석을 듣고는 곧장 수긍하는 모습이 말입니다.


그렇게 악한 왕이라면 다니엘을 당장 잡아 죽이는 것이 수순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지요.

그래야 보여줄 건 다 보여줄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느부갓네살왕이 꾼 꿈 말입니다.


일곱 때와 일곱 때를 마쳤을 때의 상황 말입니다.


벨사살왕이 쉽게 다니엘의 해석을 수용하는 이유는 느부갓네살왕의 꿈을 통해 예언된 말씀이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벨사살왕이 왕의 전 기명으로 술을 마셨다는 것은 그 곳에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 하나님의 섬기는 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더라도 우리들이 당장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조롱과 핍박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 기명을 그렇게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느부갓네살왕의 꿈대로 짐승이 다스리고 있었고, 그 기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 동안에 성도들은 고난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 고난은 아주 의도된 고난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게 되면 사도들이 고난 받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것이 아주 의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제가 성도들의 고난과 예수님의 고난을 동일하게 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의 고난의 주님의 고난에 포함된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그 고난의 성격입니다.


핍박을 가하는 자들은 아주 의도적으로 공격합니다.

바로 벨사살의 행동이나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의 행동이 의도성이 아주 강합니다.


이 둘의 특징은 하나님의 뜻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 듣고 다 경험했지만 예수님을 죽여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자색옷을 입게 됩니다.


느부갓네살왕의 꿈대로 오직 예수님만이 온 만유의 주님이심이 만 천하에 드러나고, 악당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다 알고도 왜 행치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하시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다 알고도 그렇게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벨사살왕의 위치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그런데 다, 제대로 행합니까?


안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너 자신들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만유의 주님되신 예수님만 믿을 분이시오 그분만이 주님이심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임을 벨사살왕을 통해 알게 됩니다.


누군가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짐승이 마귀가 우리 배후에 있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우리의 배후에 주님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오늘같은 본문을 보면서 흥분을 감출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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