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강해

강해12

푸른 섬 2008. 9. 10. 10:45

어디에 마음을 둡니까?

다니엘7:1-28

오늘 본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먼저 2-8절을 보게 되면 다니엘이 본 이상에서 큰 짐승 넷을 볼 수 가 있습니다.


4절을 보게 되면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습니다.  사자와 같은데 그에게 독수리의 날개가 있다면 그 힘의 위력은 어느 정도 이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이 보는 가운데 두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처럼 두발로 서고 사람의 마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강력한 힘을 소유한 짐승, 즉 왕이라도 사람처럼 유약한 존재로 됩니다.


5절에서는 곰과 같습니다. 이 곰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소유합니다.


6절에서는  표범과 같은 짐승을 봅니다. 그런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머리 넷이 있습니다. 여전히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무시무시한 모습을 가졌지만 머리가 넷이라고 하니 그 힘의 크기야 처음 짐승보다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네 번째 짐승은 힘이 더 약할 수밖에 없겠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비록 갈수록 힘이 약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 힘이라는 것은 너무나 강력합니다.


7,8절을 봅시다.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랍습니다.  이 짐승은 굉장히 강합니다. 뿐만 아니라 극히 강한 철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발로 밟습니다.

그런데 이 짐승은 전에 있던 세 짐승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열 뿔이 있습니다.  그런데 뿔 사이에 작은 뿔이 나고 그런 가운데 먼저 뿔 열 중에 셋은 뿌리까지 뽑혀버립니다.

그런데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입이 있어 큰 말을 합니다.


이것이 다니엘이 본 이상입니다.

여러분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너무나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2절부터 8절까지 자세히 읽어보면 결국 짐승으로 표현된 것들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에서 사람으로 시작해서 8절에 사람의 눈과 입으로 끝나지 않습니까?


결국 사람이 왜 이렇게 짐승처럼 무섭고 악하게 행하느냐 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가인의 후손중 라멕에게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행하는 모습이야 말로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짐승처럼 행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행세는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 즉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두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벨과 같은 자는 죽임을 당하고 노아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무시를 당하며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 시집가고 먹고 마시고 장가가는 것에 푹 빠져 있을 때, 돈벌고, 자식 키우고, 취직하는 것에 목을 매고 있을 때 오직 무식한 자처럼 바보처럼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을 붙들고 120년 동안에나 배를 만든 노아가 있었습니다.


그의 삶이 그 당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겠습니까?


여러분 지금 다니엘이 본 이상이 의인 아벨이 살았던, 경험했던 그 시대의 악한 자들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사실 다니엘의 이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런 유혹이 빠져듭니다.

첫째 짐승은 어느 나라이고 어떤 왕이냐? 그러면 둘째는, 셋째는, 넷째는, 열뿔은 , 뽑힌 세 뿔은, 그러면 작은 뿔은 어떤 나라인가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사실 다니엘서에서도 나라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라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고 하더라도 성경은 우리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책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성경은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들되신 예수님이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천하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들되신 예수님의 주되심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범죄한 아담의 본성을 따라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그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둡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를 읽으면서 장래의 예언에 대해서 나온다고 하니까 죄인들이 앞 다투어 장래사에 대해서 풀어 헤쳐 보입니다.

다 성경에 근거해 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말을 하기는 합니다. 양념정도로 말입니다.

9-12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그 때에 나가 그 큰 말하는 작은 뿔의 목소리로 인하여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바 되어 붙는 불에 던진바 되었으며 그 남은 모든 짐승은 그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짐승들이 발악을 해 보아도 심판주 되시는 인자 같은 분에게 불 심판을 받게 될 뿐입니다.

결국 13,14절에서 말씀하시듯이 인자 같은 분, 즉 예수님이 만유의 심판주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짐승은 짐승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한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시시합니까?

너무 시시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짐승이 새끼를 낳아도 짐승입니다.

그래서 짐승에서 짐승으로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물론 이 짐승은 세상 나라를 말하며 왕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마귀의 종인 인간입니다.


이들이 강력한 힘을 소유하여 세상이 주관자이냥 까불어 되지만 인자 같은 분이 오심으로 세상의 주인이 짐승이 아니라 인자 같은 분, 즉 예수님이심을 만 천하에 드러내십니다.


사실 느부갓네살 왕이나 벨사살 왕이나 다리오 왕들이 세상의 주관자이냥 행세해 보지만 그들은 결국 온 만유의 주님은 예수님, 인자되신 예수님밖에 없음을 잠시 등장해 사라짐으로 증거하는 증인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먼저 5장 6장을 보고 7장을 보니 얼마나 쉽게 7장이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상의 해석을 주님께서 알려 주십니다.

15-27절입니다.


네 짐승은 네 왕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영원한 나라를 얻게 됩니다. 그 누림은 짐승들이 잠시 잠시 왕노릇 하는 그런 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영원하고 영원한 누림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영원한 나라를 얻기 전에 이 짐승들로부터 고난을 당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힘으로는 이 짐승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오셔서, 즉 인자 같은 분이 오셔서, 예수님이 오셔서 성도들을 위해 신원하심으로 때가 이르러 성도가 나라를 얻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좀 의아한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성도들이 나라를 얻기 전에 짐승들로부터 고난을 당하고, 그 다음 인자가 오셔서 신원하심으로 성도가 나라를 얻는 것이 시간적 흐름이라고 들립니다.

그렇게 된다면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없이도 존재 가능한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이렇게 보셔야 합니다.

다니엘과 같은 자가 고난을 받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해 고난을 받습니다.

다니엘이 어떻게 성도가 되었는가는 바로 예수님의 신원 때문입니다.

사실 짐승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다니엘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그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갑니다.


자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성도가 나라를 얻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성도는 넷째 짐승에 의해서, 나라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합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을 대적할 만한 위치에 있는 냥 행세를 합니다.

성도는 이런 짐승의 나라에서 한 때, 두때, 반때를 지냅니다.


그러나 짐승의 시기는 한 때, 두 때 반 때 뿐입니다.

이 때가 지나면 이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주님의 나라에 굴복하게 됩니다.


7장을 통해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짐승이 강력한 힘과 무서운 힘을 가진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라는 인간의 나라입니다. 이들이 그 힘을 성도를 괴롭히는 데 사용하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성도는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신원으로 성도는 영원한 나라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구원받는 자는 반드시 짐승들로부터 고난을 겪는다는 사실입니다.


고난이 없는 자는 성도가 아님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시면서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이 시기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한때 두때 반 때 만이 짐승이 다스리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인자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성도는 고난을 받고 있고 짐승의 나라가 지속되는가입니다.


그 이유는 인자되신 분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주님이 되심으로 자신의 백성, 성도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이 이 시대는 누가 주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인가를 드러내는 시대 ,즉 심판의 시대입니다. 아직 불 심판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인자되신 주님이 이 땅에 초림 하시어 부활 승천하시어 주가 되셨기 때문에 이미 세상은 그 주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한 때 두때 반 때와 같은 상황 속에서 성도들은 고난 받으며 구원 얻은 자임을 증거하고 짐승들은 성도들을 핍박하면서 왜 불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짐승, 열뿔, 작은 뿔의 해석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다니엘이 당한 고난이나 스데반이 당한 고난은 모두가 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하는 성도의 고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칠년이라 하지 않고 일곱 때라는 표현을 했고, 오늘 본문에서도 한 때 두때 반때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9장에 가면 70이레라는 것으로 표현되어집니다.


그러니 우리의 관심을 주님되신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따른 곳에 마음을 두는 것은 짐승에게 오히려 속는 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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