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강해

강해 3

푸른 섬 2010. 1. 10. 16:31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요나서1장17-2장10 

요나는 지금 죽음의 고통 속에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곧 숨이 끊어질 듯한 상황에서 성전을 바라봅니다.

그냥 읽어 보면 요나가 뱃속에서 아주 여유를 부린 것 같이 보입니다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숨이 넘어갈 듯한 상황에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우리 가끔 영화를 보며 이런 장면이 나오잖아야.  폐쇄된 공간에 물이 차오르는데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합니다.

살려달라고 발부둥 치지 않습니까?


요나가 지금 그런 상황과는 비교도 안 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바다에 던지라고 할 때는 금방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큰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엄청난 고통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났다는 고통을 받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었던 적이 있어야 이런 경험이 어떤 경험인지 알겠지요.


이런 상황, 최악의 상황에서 나온 기도가 이 기도입니다.


 열왕기상 8장에 나오는 솔로몬의 기도가 나옵니다.

30절에 보면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41절에서는 이방인이라도 이 전을 향해 기도하면 주를 경외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적국의 땅에 끌려 가도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요나는 지금 무엇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죽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그냥 죽음이 아닙니다.


주의 목전에서 쫓겨나는 죽음을 경험합니다.

영원히 가두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린 요나가 단순히 죽음이 두려워서 여호와께 기도드린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죽음이 아닙니다.


만일 요나가 두려워한 것이 그런 죽음이었다면 요나나 뱃 사람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 집어 넣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호와로부터 버려짐이 어떤 것인가를 경험케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전은 그런 상황에서도 어떤 능력을 발휘합니까?


죄용서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마태복음12장38-45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 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 판 때에 남방 여인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 되고 수리 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표적을 구하는 악한세대에게 예수님께서 보여주실 표적은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듯이 예수님께서도 삼일을 땅속에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26장38-39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27장46절을 봅시다.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는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요나를 통해 장차 오실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실지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요나가 말 안 듣다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 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른 차원에서 요나를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나가 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야만 했습니까?

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경험을 해야 했습니까?


그 이유는 니느웨라는 성이요 또한 뱃사람들 때문입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요나는 굳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괜히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그냥 죽음을 경험하는 죽으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신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이 무슨 일을 발생시킵니까?

죄 용서함을 일으킵니다.


과거엔 예루살렘 성전이 그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 동안 땅 속에 계셨던 분에 의해 죄가 용서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셨던 그 분에 의해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요나 선지자를 니느웨라는 함정에 빠뜨리시고 우상 숭배하는 뱃사람들 가운데 집어넣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전하라고 요나 선지자를 이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억울한 일이 아닙니까?

우리들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나 선지자는 감사가 터져 나옵니다.

어찌 그리 여기 앉아 있는 우리들과 다를까요?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하면 억울해서 이를 팍팍 갈지 않겠습니까?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해.


왜 내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여 주는 삶을 살아야 해.

이런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놀랍게도 성도의 삶이 요나의 삶과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몰려 지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예수님께서 미리 다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4장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7절입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이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리라”

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누가 알아서 다 합니까?

성령께서 알아서 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5장19절입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성도는 이렇게 내 몰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분명 세상과 다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거룩하다는 말입니다.

구별된 자입니다.

성령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성도를 싫어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세상이 성도를 싫어합니까?


예수님이 싫기 때문입니다. 어떤 예수님이 싫습니까?

버림받은 예수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한  예수님이 싫은 것입니다.


자신이 죽어 남을 살리는 예수님은 마음에 쏙 듭니다.

그리고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동안 있다가 다시 살아 나온 예수님은 좋습니다.


그런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3일은 죽어도 싫습니다.


누가 요나의 경험을 하고 싶겠습니까?


왜 내가 남 때문에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왜 내가 남 때문에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야 합니까?


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졌다고 느껴질 정도의 경험까지 해야 합니까?


여러분도 듣기 싫은 말 아닙니까?


듣기 싫으면 안 들어도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기 백성을 그렇게 몰아가신다는 사실입니다.


하기 싫어도, 도망 가도 도망가도 주님께서는 도망가는 중에 십자가에 속 집어 넣어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성령을 주신분의 능력이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입에서 감사가 터져 나오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인하여 말입니까?

십자가로  인하여 감사가 터져 나오게 하십니다.


내가 고난의 길을 갔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요나 선지자가 무엇으로 인해 감사합니까?  성전. 죄 용서함이 이루어지는 성전으로 인해 감사했습니다.


성도는 오직 한가지만으로 감사하는 자입니다.

바로 죄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말입니다.


누가복음10장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인간들이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죄 용서함을 받아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일까요? 인간들의 본성은 이런 것에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으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가 십자가의 피로 죄용서함을 받아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는 이것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미움을 받습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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