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로마서강해 60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

푸른 섬 2014. 2. 23. 17:08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

로마서152-3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아갈까요?

금요일 새벽입니까? 대한민국의 피겨선수 김연아가 은메달을 땄습니다. 저는 잠을 자서 몰랐는데 김연아 선수가 불이익을 받아 은메달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금메달은 김연아 선수의 것이라고 아우성입니다.

 

왜 이렇게 요란할까요? 기분나쁘다 말입니다. 왜 내가 판단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게 판정을 내리느냐?

 

그런데 러시아 선수입니까? 그 선수는 러시아에서 최고 인기랍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판정을 어떻게 내리던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 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에 기뻐합니다.

 

한 사건에서 기뻐한다는 기준이 두 가지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신문을 보니 조류독감 때문에 닭유통업자가 자신과 딸이 함께 자살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한 쪽에는 기뻐하고 한쪽에는 초상나고.

 

한 쪽에서는 한국의 어떤 교회 교인들이 이집트 놀러갔다가 테러를 당했습니다. 돈을 모아 모아 이집트 출애굽현장을 가보겠다고 갔는데 그곳에서 죽고 다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우리가 뉴스를 보게 되며 내가 기쁜 일과 함께 수많은 사건들을 접합니다.

 

또 한 신문을 보니 중국에서는 별그대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도민준을 살려라고 난리 법석이랍니다.

 

도민준이 죽는 것이 도대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돈을 잃나요? 아니면 자신의 생명을 잃나요?

 

갈라디아서 110절에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성령을 받은 사도바울이 별에서 온 그대처럼 재미난 이야기를 썼으면 좋았을텐데.

사람들은 성경이 자신들을 기쁘게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지순례라 하여 기도하고 준비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의 현장을 목격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당연히 함께 하신다고 생각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테러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 여행을 했겠지요.

물론 테러를 생각지도 안했겠지요.

 

이게 남의 일이니 그냥 구경꾼으로 있지요.

우리 자녀가 내 아내가 , 내 남편이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떨까요?

 

누가보음134,5절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실로암 망대가 왜 무너졌을까요?

사람이 너무 많이 올라가서?

아니면 너무 노후해서?

아니면 부실공사?

 

사람들은 실로암망대가 무너져 사람이 죽으면 그 원인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결국 그 원인은 부실공사 아니면 노후되었든지, 관리 부실이든지, 사람이 너무 많이 올라갔든지.

 

아마 어떤 부모는 이런 말을 했을지도 몰라요.

그날 내가 가지 말라고 했지. 내 말 들었으면 안 죽었을 텐데.

 

그러나 주님생각은 달라요

주님은 회개하라고 실로암 망대를 무너뜨려서 열여덟명을 죽이셨어요.

 

테러당해 죽게 하시고 내전나서 죽게 하시고, 전쟁 일으켜 죽게 하시고, 조류독감 일으켜 죽게 하셨어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열 받을 사람들 한 둘이 아닌 줄 압니다.

그러면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것을 설명해 보세요.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여기에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이 있습니까?

사람을 기쁘게 하려면 일단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회개시키는 것은 좋은데 왜 사람을 죽입니까?

죽은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사람을 죽입니까?

만일 죽은 사람 중에 내 아내, 나 자식, 내 남편이 있다면 어떡합니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사람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생각해요.

예수님을 믿으면 뭔가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자하고 찾는l 이유는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을 믿는데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없고 자신의 것을 하나 하나 뺏어가 버리는 분이라면 누가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2절을 보게 되면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이웃을 기쁘게 하라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이웃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어떤 행동을 한다는 말입니까?

이웃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목사들이나 교인들이 이웃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지요. 그런데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은 곧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것으로 하랍니다.

 

선과 덕이라고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런데 3절에서는 전혀 낯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2절과 3절이 연결고리가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인데 문제는 남을 기쁘게 하는데 주님은 왜 비방을 받으셨는가 말입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시 실제 예로 들어가보며, 14장에 음식문제가 나옵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기 위해 음식을 먹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싫어할까요?

당연히 좋아하지요. 그게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웃을 기쁘게 하는데 왜 비방이 미칩니까?

이게 이해가 되나요?

비방이 아니라 칭찬이 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성경은 사사로이 풀게 아닙니다.

 

3절에서 이미 정답을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앞부분에서 이미 다 언급했지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며 누구를 기쁘게 하셨습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메시야는 누구를 기쁘게 하신 분입니까?

 

마가복음111절에 하늘로부터 소리가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시편699절을 로마서 153절에서 인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이기 때문에 미워합니다. 누가 미워합니까? 누가 비방합니까?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운 사울 왕이 다윗을 미워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들로부터 미움 받고 비방을 받았습니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말씀을 지금 로마서153절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시편698절을 보면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라고 합니다.

 

로마서15장을 보면서 아름다운 교회를 꿈꾸는 자들의 생각을 산산조각 내는 말씀입니다.

이웃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형제라고 여기는 자들로부터, 이웃이라 하는 자들로부터 비방받고 미움 받는 일입니다.

 

너무 당황스런 말씀이지요.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일이 어떻게 비방 받고 미움 받는 일인가요?

그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가요?

 

갈라디아서31절에 나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은 곧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눈앞에 펼쳐주는 일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눈앞에 보여준다는 것은 사람이 기뻐할만한 것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행위와 행위로 만나게 된다면 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지요.

 

행위와 행위로 만난다는 것은 주님을 빼버리자는 말입니다. 즉 나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왜 분노합니까?

자신들을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이웃을 사랑하는 삶. 선교, 전도, 십일조 하는 삶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이 강한 자를 인정하겠습니까. 약한 자를 인정하겠습니까?

약점을 담당한 자를 칭찬하겠습니까 아니면 약점이 있는 자를 칭찬하겠습니까?

 

우리의 기준은 행위를 갖고 판단을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믿음이 강한 자, 약점을 담당한 자가 칭찬받고 인정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비방을 받으셨지요. 왜 비방을 받았습니까?

자신이 주님이심을, 세상은 어둠임을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왜 비방을 받습니까?

십자가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만이 주님이심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죄인중의 괴수요 은혜로 산다고 하니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믿음이 강한 자, 약한 자 모두 은혜로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십자가의 피만 증거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들을 비방할까요?

 

이웃이라 여겼던 자들이 형제라 했던 자들이 비방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비방할까요?

나는 믿음이 강한 자라는 것을 앞장세우면서 비방합니다. 믿음이 약하다는 것을 가지고 비방합니다.

 

십자가의 피만을 자랑하는 자들을, 나는 죄인중의 괴수요, 주님의 은혜로 산다고 하는 자들을.

이유 없이 까닭 없이 미워하고 비방합니다. 성도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