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로마서강해 62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푸른 섬 2014. 3. 9. 16:45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로마서155-6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5절에 예수를 본받아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혹시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책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예수를 본받는다고 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벌써 부담이 확 오지 않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인들의 접근 방식은 항상 이런 방식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고 대답하겠지요.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일까요?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이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실 것이라는 것이 마음속에서 결정된 상황입니다. 마음속에 결정된 상황에서 성경을 읽고 연구해 보면 결국 자신이 본받을 수 있는 예수님 상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예수님은 하실 말만 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도 할 말만 하고, 가능하면 많은 말을 하지 말자.

세리와 죄인의 친구시니 우리도 그들의 친구가 되자.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말자.

 

아니면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을 본받자.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을 본받자.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본받자 등등. 성경에서 나올 수 있는 예수님의 모든 모습을 본받으려고 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본받으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본문만 보더라도 예수님을 본받으면 서로 뜻이 같게 된다고 하시지요. 그리고 한 마음이 되고 한 입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며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서로 뜻을 같이 하자. 한 마음, 한 입이 되자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흔히 많이 듣는 말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의 몸이니 당연히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교회가 나누어지거나 분열되면 안 됩니다.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나를 내려놓고 기도하십시오.

 

이것은 인내가 필요한 일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참으세요. 그것이 인내입니다. 그리고 위로는 주님께서 해 주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다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결코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을 수 없습니다.

 

들어 보니 어떻습니까?

노력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은 자신의 땀과 수고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예수님을 본받는 것은 더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조금만 유심히 읽어 보면 이런 생각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너희를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신다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시지요.

 

하나님께서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며 여기에 우리 인간이 들어갈 자리가 어디에 있을까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마 없다고 할 겁니다.

그런데 없다고 해 버리며 여기에 우리로 영광을 돌리게 하신다는 말씀은 헛말이 됩니다.

 

반드시 우리가 들어가야됩니다. 우리가 들어가지 않으면 영광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말씀대로 되어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 어떤 모습으로 들어가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릴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의인이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방식이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어 놓고 주님의 피로 구원하시는 방식으로 영광을 받습니다.

 

로마서 1136절에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되어 한 마음 한 입이 되는 일은 성도들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서로 뜻이 같게 된다고 하셨는데 무엇을 두고 뜻이 같게 된다는 말씀일까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배당을 짓기 위해서 땅을 구입하는데 뜻이 같게 된다는 말씀일까요?

아니면 구제하는데 뜻이 같아진다는 말씀일까요?

 

아니면 지금 본문에서 언급하는 음식문제에 대해 서로 뜻이 하나가 된다는 말씀일까요?

 

사람들은 서로 뜻이 같이 되고 한 마음, 한 입이 된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식으로 하나된 것이 얼마나 갑니까?

아니 하나가 될 수가 있을까요?

 

세 명이면 세 명의 마음을 어떻게 압니까?

그 순간순간 변하는 마음을 누가 판단할까요?

 

열 명이면, 백 명이면?

 

한 마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마음입니다.

인간들이 조작한 마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말씀은 첫째 아담에 속한 자들은 결코 해 낼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피조물인 죄인이 할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4장을 보면 아브라함을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일을 아니할 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즉 일하지 않았다. 경건하지 않았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불법이 사하심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일을 하지 않았다 정도가 아니라 불법을 행했는데 그 죄를 용서하셨고 의롭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이 한 마음, 한 입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721절을 보면 예수님의 기도가 나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기도가 로마서에서 다시 말씀되어지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분열하지 않고 하나 되는 것을 주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하나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하나가 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까? 성령 받게 된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전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분이 주님이시다라는 내용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성령 받은 자들이 전했습니다. 이 모습이 한 마음 한 입 된 모습입니다.

 

여호수아 7장에 아이성 전투가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입니다.

첫 번째 여리고성 전투에서는 대승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성과 마주합니다.

 

여리고성에 비하면 아이성은 쉽게 점령할 수 있는 성입니다. 그래서 이만천명만 올라가도 충분히 점령할 수 있는 성입니다.

누가 봐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36명이 아이성 사람들에 의해 죽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삼천명이면 아이성을 쉽게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아이성이 너무 강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주의 이름을 위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죄를 범했다고 하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 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범인을 찾아내니 유다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뽑혔습니다.

 

딱 한 사람입니다. 민수기 2651절을 보면 이십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된 자가 육십만 천칠백삼십명입니다.

 

여기에 누가 들어가 있습니까? 아간이 들어가 있습니다.

육십만 분의 1정도 됩니다. 0.0000016정도 됩니다.

얼마나 미미한 숫자입니까?

 

그런데 한 사람 아간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를 패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한 사람 아간으로 인해 36명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들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잘못이 없어요.

 

잘못 없는 36명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이셨습니다.

 

아간의 죄가 무엇입니까?

언약을 어긴 것입니다. 여호와의 것을 도둑질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는 전쟁은 붙이시는 전쟁입니다.

여호와께서 붙여주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사람의 힘이 개입되는 전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비록 행위를 하지만 그 행위로 인해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홀로 승리하시는 전쟁입니다. 여기에 아간이 여호와의 전리품을 자신의 전리품으로 여겼습니다.

아간은 자신의 수고도 전쟁승리에 한몫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리품을 조금 취했습니다. 아간은 가나안 정복전쟁이 자신의 전쟁이라 여겼던 겁니다.

결국 이 일로 이스라엘이 패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간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드셨습니다.

 

한 몸이라는 것은 주님이 만들어 가시지 결코 인간이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두고 한 몸이라고 하는가 했을 때에는 주님의 피만을 증거할 때 한몸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간처럼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자가 있다면 한 몸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다는 말씀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주님의 피 공로만을 증거하는 것을 두고 말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