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세이

사무엘하24장1-10

푸른 섬 2015. 3. 3. 21:32

자책

사무엘하241-10

살면서 자책하지 않는 사람,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빠를 한 없이 미워했는데 다음날 죽을 병에 걸렸다면 어떨까요?

 

며칠 전에 중환자실에 갈 일이 있어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25년 동안 누워있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사고가 나서 누워 있답니다. 부모들이 괜히 군대 보냈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입영 일을 달리만 했어도 그런 사고 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까요?

 

달리 말하면 내가 어떤 선택을 잘못해서 이런 일을 당했으니 후히 막심이라는 겁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는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을 접하게 됩니다. 말씀에서의 현실이란 우리를 화나게 하고 짜증나게 하는 현실입니다.

 

세계사에 관한 책들을 보게 되면 인간이 너무나 제대로 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주님이야기를 나오지 않습니다.

 

제 딸아이가 세계사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예수님에 대해서는 조금만 기록해 두었고, 예수님의 이름에 님도 부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이 땅에서의 역사라는 것은 사람의 행위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다니는 직장 속을 들여다보면 그 속엔 사람의 행위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지 않습니까?

보이지 않는 주님의 행위가 들어 있습니까? 없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자는 시간까지 어느 것 하나 사람의 행위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요압장군의 말을 들어 보게 되면 다윗 자신의 왕권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자랑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한 것이 분명하지요.

 

요압장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윗왕은 기필코 자신이 왕 됨을 자랑하고야 맙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한번 생각해 봅시다. 다윗왕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우린 다윗 왕을 지적질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왜 다윗 니가 왕 행세하느냐? 지금의 나라를 만드신 분이 여호와이시지 않느냐고 질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없는 집안에서 고생고생해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높은 관직에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셀 수 있잖아요. 내가 수고해서 번 돈이니. 보자 보자 나에게 얼마의 돈이 있는가 얼마든지 셀 수 있잖아요. 그게 뭐가 나쁜가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며 어느 누가 보아도 잘못된 행동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하지 않으면 선한 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들은 다윗처럼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왕노릇 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실은 그런 행동이 왕노릇하는 행동인데.

 

다윗의 인구조사 출발점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켰습니다.

우린 어떻게 하면 진노 받지 않을까를 연구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진노 받게 하기 위해서 인구조사를 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다윗이 이걸 알까요 모를까요? 모릅니다. 그러면 이걸 안다고 피할 수 있을까요? 피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것이 이미 정해 졌기 때문에 다윗이 어떻게 한들 그 뜻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아무리 자책하고 회개해도 재앙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재앙은 반드시 받아야 하고 그 속에서 번제와 화목제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다윗의 역할이었습니다.

 

다윗은 화목제물되신 예수님을 전하는 역할로 왕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니 화목제물되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겁니다.

 

가인은 반드시 분노해서 아벨을 죽여야 합니다. 그 환경을 조성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야만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가인과 아벨이 한 세트가 되어 증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인이 아무리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생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분이 주님임을 전하기 위해 모든 행위를 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을 제자들을 부르실 때 이미 베드로가 어떤 짓을 할지, 도마가 어떤 행동을 할지, 가룟유다가 어떻게 예수님을 팔아먹을지를 다 알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걸 몰라요. 심지어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해 주셨지요. 요한복음670절에 나옵니다. 너희 중에 하나는 마귀니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듣는 가룟유다가 이 말을 알아들을까요? 몰라요. 닭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한다는 말을 우리가 들었다면 어떤 행동을 취하겠습니까? 우린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조건으로 들어가려고 할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됩니까? 어떻게 해 보아도 베드로는 닭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이 주님이심이 드러나지요. 만일 베드로가 그래 난 결심했어. 절대로 부인하지 않을 거야 라고 해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주되심이 드러날 수가 없습니다.

 

가룟유다나 베드로 둘 모두 자책했습니다. 다윗처럼 자책했지요. 우린 이런 생각을 하지요. 내가 회개하면 주님이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가룟유다는 뉘우쳤습니다. 돈도 돌려주었습니다. 아직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가룟유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울 때 예수님의 말씀이 심히 통곡했습니다. 좀 이상하지 않나요. 심히 통곡하는데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어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지요.

 

닭이 울음소리에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나도 여전히 난 예수님 편임이 드러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상당히 비급하지요.

 

가룟유다는 자살해 버리잖아요. 어떻습니까? 누가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까?

 

가룟유다가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지요.

 

그런데 이런 인간의 행위는 주님 사랑 받는데 있어서 어떤 조건이 되지를 못합니다.

처음부터 사랑받는 자와 미움 받는 자가 정해서서 그들의 행위를 통해 사랑 받는 이유를 전하고, 미움 받는 이유를 드러냅니다.

 

사랑받는 이유와 미움 받는 이유가 전혀 자신들의 행위에 있지 않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주님께 있음을 보여주는 역할을 보여주는 겁니다.

 

정말 짜증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뭐 집에서 기르는 개도 아니고.

인간의 행위에서 구원과 심판이 결정되어지는 어떤 것도 없기 때문에 기분 나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구원하시고 심판하시는 주님임을 보여주기 위해 인간의 행위들을 쏟아내게 하십니다.

 

그 속에서 인간들을 자책을 쏟아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내가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하지 않았다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내가 더 떳떳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자기 자신이 왕 노릇 하지 못해서, 왕 노릇 하고 싶어서 자책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 하지 않다가 기도 오래하고, 헌금하지 않다가 헌금 많이 하고, 설교도 열심히 준비하지 않다가 열심히 준비하고. 이런 행위하나하나가 주님의 일에 영향을 행세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들이 말하는 주님의 일이란 실상 마귀의 일이지요.

 

그러면 성도는 자책하지 않습니까?

합니다. 다윗도 했잖아요. 잘못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다음 나아가는 것이 자기 자신의 왕노릇을 정당화 하고 자신의 힘을 더 높이는 쪽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이유 즉 화목제물을 돋보이게 하는 곳으로 나갑니다.

 

이게 성도의 삶입니다.

우린 우리의 세계 속에 갇혀 있어서 우리 몸의 세계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그 세계는 오히려 주님 안에 갇혀 있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자신에게로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니라 화목제물되신 예수님으로 결론 나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행위, 선택으로 인해 마음껏 자책하시고 십자가의 피만 높여 드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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