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세이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을 읽고

푸른 섬 2015. 12. 15. 20:42

좁은 문을 읽고

앙드레 지드- 배기열 옮김 금성출판사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7:13,14)

 

보티에 목사는 좁은 문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설교했다. 이 설교를 들은 주인공 제롬,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알리사 또한 좁을 길을 찾아 드는 사람이 되리라고 결심한다.

 

알리사는 처음부터 자기 힘만으로 하나님 곁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길을 가르쳐 주는 분은 예수님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롬은 그 길을 인도하는 사람은 알리사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후 이들의 사랑은 알리사의 동생 쥘리에트가 제롬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안 알리사가 제롬과의 약혼을 거부함으로 끝을 알 수 없는 사랑으로 흘러간다.

 

알리사는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함으로 제롬이 거룩한 덕에 이르는 역할을 하려 한다.

그러나 제롬은 끊임없이 알리사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제롬은 알리사의 희생 역할로 인해 알리사와 멀어지게 된다. 이후 알리사가 죽은 후 받은 편지에서 알리사가 이전 보티에 목사로부터 설교를 들은 좁은 문으로 찾아드는 사람이 되도록 제롬이 원하는 역할을 했음을 알게 된다. 제롬은 언제까지나 이 사랑을 마음에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알리사를 영원히 사랑할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했던 쥘리에트가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쥘리에트가 쓰러져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얼마 후 하녀가 램프를 들고 들어 왔다.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신에 매여 사는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 생활이 바람과 같이 그 위를 걸어가는 인생이야 말로 진정 인간이 살아야 할 길이다.

 

쥘이에트 생각엔 알리사와 제롬이 손을 맞잡고 걸어가겠다는 그 좁은 문은 인간이 꾸는 꿈에 불과하다.

왜 어리석게 자신의 인생을 신의 말씀에 매여 사는가? 인간은 그런 잠에서 깨어 나야한다.

 

이와 달리 알리사는 좁은 문을 찾아드는 길을 스스로 걸으면서 제롬이 좁은 문을 찾아들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그가 받은 사명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는 홀로 쓸쓸한 죽음에 덮힌다.

 

나름대로 좁은 문을 찾아 드는 인생을 살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 좁은 길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좁을 문을 찾아드는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 달리 제롬은 알리사의 방으로 통하는 입구가 좁은 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모진 고통이 뒤따를 것이라 예상했다.

 

보티에 목사, 제롬, 알리사의 생각과 행위는 청교도 신앙에 근거한다.

 

마태복음 713,14절 말씀을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와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사랑에 그대로 적용하는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어릴 때 우리들이 가졌던 신앙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는다.

모든 성경 말씀이 항상 나를 위한 말씀이라 생각하며 나의 결심을 굳게 하고, 나의 사랑을 더욱더 확고하게 하며, 나의 삶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말씀이요 내 앞날을 희망차게 하는 말씀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짐승의 생각이요 마귀의 생각임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제롬과 알리사의 삶의 흔적 그 어디에서도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님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만 보인다. 그리고 그 다른 한쪽에서는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네 피를 흘린들 그게 너에게 어떤 행복을 주겠는가? 이들은 오직 그 순간 자기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한쪽은 성경 말씀을 이용해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내고, 다른 한쪽은 성경말씀을 비웃으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가는 이 땅의 죄인들.

 

좁은 길 좁은 문은 내가 원한다고 갈수 있는 길이 아니다. 주님이 좁은 길, 좁은 문을 끝임 없이 만드셔서 성도가 걸어가도록 하는 길이 좁은 길이요 좁은 문이 되게 하신다.

 

그 좁은 길 좁은 문에서 주님은 성도의 죄를 보게 하시고 십자가의 피만을 자랑하도록 하신다.

 

십자가를 만나지 못하는 길은 좁은 문으로 향하는 좁은 길이 아니다. 그 길은 자신이 만든 협착하고 좁은 길일 뿐이다. 실상은 넓은 길이요 많은 사람이 찾는 길이요 멸망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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