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

창세기44장14-34

푸른 섬 2007. 7. 16. 12:46
 

죄악을 적발하시는 하나님

창세기44장14-34

요셉은 자신이 계획한 대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자신의 형들을 위기로 몰아 넣습니다.


16절에서 유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였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참으로 이상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분명 정직했는데 이상하게도 베냐민에게서 요셉의 은잔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다가 하는 말은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모든 자가 다 주의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합니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였으니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갑자기 왜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했다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유다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악을 꺼집어 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기꺼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자들이 요셉의 종이 되겠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17절입니다. “요셉이 가로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나의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요셉은 오직 베냐민만을 잡아 두겠다고 말합니다.


18-34절을 한번 더 보겠습니다.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종으로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고하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옵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어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비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우리가  내 주께 고하되 우리에게 아비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 노년에 얻은 아들 소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 어미의 끼친 것은 그뿐이므로 그 아비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나로 그를 목도하게 하라 하시기로 우리가 내 주께  말씀하기를 그 아이는 아비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아비가 죽겠나이다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말째 아우가 너희와 함게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고하였나이다 그 후에 우리 아비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말째 아우가 함께하면 내려가려니와 말재 아우가  우리와 함께 함이 아니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수 없음이니이다 주의 종 우리 아비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간 고로 내가 말하기를 정녕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너희가 이도 취하여 가려한즉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칵되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하지 아니하면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오려 보내소서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유다가 물론 자신들이 요셉을 어떻게 했는지는 말하지 않지만 지금 말하는 것 속에 자신들이 요셉을 팔아다는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자신들의 죄악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슨 근거로 말씀드리는고 하면 이전 요셉을 팔때에는 요셉과 함께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죽이려고 하다가 팔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냐민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합니까?


자신이 주의 종이 되겠다고 말하면서 베냐민만은 형제와 함께 돌려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자신은 베냐민과 함께 할 때에만 아비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너무나 달라진 모습이지요.

아버지 야곱이 베냐민을 특별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다가 잘 알 고 있습니다.


과거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특별히 사랑한 것도 알고 있었고요.

그 때에는 요셉이 그렇게 밉고, 요셉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강해서 결국 요셉을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요셉 앞에 선 유다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버지의 위로와 기쁨이 되는 베냐민만은 반드시 아버지께로 돌려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종이 되어서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유다는 자신의 말 속에서 과거 자신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죄악을 하나님께서 적발해 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죄악입니까?

형제를 미워한 죄악, 물론 그럴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형제들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 자들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들은 누구를 죽였는고 하면 아브라함의 씨를 죽이려고 했고, 그 씨를 팔아 먹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하나님보시기에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창세기38장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유다가 다말을 통해 자신의 불신앙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말의 관심은 하나님의 약속의 자손들인데 반해 자신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아들 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말을 통해 유다는 자신의 죄를 알게 된 것입니다.


지금 유다는 요셉 앞에서, 자신들이 비록 정직하지만, 이렇게 만드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적발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하셨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죄라는 것이 다름 아닌 약속의 씨에 대한 믿음 없음에 대한 죄악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우리가 보기에 좀 이해가 안되지요.

요셉이 꼭 속여 가면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가?

요셉이 속인 것은 죄가 아닌가?

이런 질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속였느냐 안 속였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아느냐를 따지시고 계신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을 속이면서까지도 형들로부터 꺼집어 내려고 하는 것은 바로 형들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심의 마음이 있느냐입니다.


요셉의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유다를 통해 이들 형제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악들이 고백되어지고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 이런 방식입니다.

우리를 어떤 상황가운데로 이끌어 가실지 모릅니다.


성도를 어떤 꼴로 만드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보기에 불합리하고 부조리 하고, 이건 해도 너무 심하다 하는 상황에서 조차 우리의 죄를 적발해 내시면서 십자가의 사랑을 고백케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는 자가 성도입니다.


이런 상황은 말도 안돼. 왜 이런 환경으로 나를 이끄셨지. 이런 불평 불만을 가질 이유가 성도에겐 없습니다.


시편51편을 보면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함으로 자신의 죄악을 제대로 알게 되고 그 죄가 오직 십자가의 피로 사해진다는 것을 믿는 고백을 합니다.


다윗이 왜 하필 하나님께서 저녁에 우리아의 아내가 목욕하게 하셨는가?

왜 자신이 그런 형편에 처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원망은 없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본래 자신은 죄인이며 오직 주께서 꺾으신 뼈만이 자신을 즐겁게 하실 수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뻔뻔해도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성경을 보니 뻔뻔한 다윗이 되지만, 본래 인간들은 다 죄인입니다.

시편51편5절을 보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우리아의 아내를 범해서 죄인이 아니라 본인은 본래 이런 자였음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함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는 방법 외에는 죄가 용서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외에는 죄용서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원치 않는 상황과 형편으로 몰아가실 때 성도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런 환경 속에서 내 죄악을 적발해 내시고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이름만을 높이려고 하시는구라라고 믿으면서 하루하루 감사하며 담대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창세기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46장28-47장12  (0) 2007.07.16
창세기46장8-27  (0) 2007.07.16
창세기43장16-34  (0) 2007.07.16
창세기43장1-15  (0) 2007.07.16
창세기41장1-13  (0) 2007.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