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

창세기46장8-27

푸른 섬 2007. 7. 16. 12:46
 

70명

창세기46장8-27

요셉의 희생으로 야곱과 그 자손들은 생명이 보존됩니다.

창세기45장7절을 보면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애굽에 팔려가 그곳에서 바로의 아비로 삼으시고 애굽의 주로 삼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45장11절을 보면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요셉으로 인해 이스라엘 가족은 애굽으로 내려가 생명이 보존됩니다.


오늘 본문은 애굽으로 내려간 생명이 보존되는 자들의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생명이 보존된다고 했을 때 우리들 생각에는 그럴 가치가 있어서 생명이 보존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70명의 이름을 살펴 보면 결코 이들이 생명이 보존될 가치가 있어서 생명이 보존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야곱을 생각해 봅시다. 그가 살아온 인생이 어떻습니까?

속이는 자의 삶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얍복강가에서 저 주시기까지 낮아 지심으로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르우벤은 창세기35장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시므온과 레위는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아는 사건이 있습니다.

디나 사건입니다.

할례를 이용하여 하몰과 그 아들 세겜, 그리고 그 족속들의 남자들을 다 죽이고 모든 재물을  뺏앗고 그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속의 물건을 다 노략했습니다(창34:25-27).

시므온에겐 가나안 여인의 소생 사울도 있습니다.


과거 에서가 가나안 여인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창26:34,35).


창세기24장3,4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이스마엘은 애굽여인을 아내로 취했습니다.


그러니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아니면 애굽 여인을 아내로 취했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이탈한 현상입니다.


유다는 어떻습니까? 며느리 다말도 역시 가나안 여인입니다.

그의 아들 엘, 오난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해서 죽임을 당하였고, 셀라를 사랑한 나머지 하나님의 약속은 뒷전으로 밀어내 버리고 다말을 내 �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 다말의 믿음으로 인해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 납니다.


이것은 유다에 대한 고발입니다. 아니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고발이라고 볼 수 있지요.

너희는 진멸대상인 가나안 여인보다 더 악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은 말 안 해도 알수 있지요.

성경에 세세하게 기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표적인 형제들이 이러한 짓을 했다면 나머지 형제들은 볼 것도 없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 각각의 소상한 이야기를 다 기록하지 않은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가롯유다를 대표로 해서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베드로를 대표로 해서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어떻습니까?

그는 이스마엘과 같이 애굽 여인, 그것도 우상숭배 최전선에 서 있는 제사장 딸과 결혼합니다.


물론 이것은 바로 왕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의 경우에도 그 어미가 애굽여인을 아내로 삼게 했습니다(창21:21).


어찌되었든지 요셉도 역시 아브라함의 노선을 따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왕족의 대접을 받았지만 이삭과는 다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자신의 족속에게 가서 취하라고 한 것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70명을 나열 했지만 이들 면면을 살펴 보면 완전한 인간은 한명도 없고 오히려 죄악 덩어리들만 가득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생명을 보존시키신다는 사실입니다.

엘과 오난을 죽이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엘 오난을 죽이셨던 하나님이시라면 르우벤이나 시므온, 레위도 죽이셔야 합니다.

유다도 마찬가지로 죽이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죽이시지 않고 기근에서도 기여히 생명을 보존케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이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비록 죄를 범했지만 이들을 애굽으로 피신케 해서 생명을 살려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특별히 70명이라는 숫자로 기록한 이유는 이들이 살아날 자격이 있어서 살아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심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70이라는 숫자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7일째 하나님께서 안식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완벽하게 다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날이 7일째입니다.


그래서 7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심에 있어서 철저하게 홀로 일하셔서 언약을 이루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간들은 어떤 인간으로 드러 납니까?

앞서 살펴 보았듯이 죄인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시는 방식입니다.


마태복음 2장15절을 보면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호세아 11장1절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출애굽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마태복음 2장 15절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헤롯으로 인해 애굽으로 피신한 사건을 두고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오신 땅 이스라엘이 애굽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 곧 약속의 땅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 그곳이 이스라엘이든 그 지경 밖이든 상관없이 약속의 땅이 됩니다. 물론 이 땅은 우리가 발로 밟는 땅이 아니라 성령이 임한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셉을 통해 70명을 애굽에서 생명을 보존케 하신 것은 곧 예수님을 통해 세상이 모두다 애굽과 같음을 고발합니다. 모든 인간들이 다 애굽같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애굽 같은 곳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고 생명을 보존케 하시는 분임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 홀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홀로 하셨음을 말씀하시기 위해 70명이라는 숫자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구원하는 자들의 구원이나 수는 완벽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로마서8장30절을 보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왜 이렇게 하셨는고 하면


29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주님으로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 되신 예수님의 증인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 가진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가 이렇게 심각하고 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피 공로로 완벽한, 부족함이 없는 구원을 받았음을 감사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완벽한 구원은 결코 나 구원받아 천국집어 넣으시기 위해, 생명보존하기 위해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구원을 완벽하게 이루신 십자가지신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완벽한 영생을 성도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도 오늘 나온 70인처럼 우리의 죄가 드러나고 예수님의 십자가 의만 드러내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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