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 강해 11

푸른 섬 2011. 8. 21. 11:38

기브온 거민

여호수아 9장1-27

1,2절을 보면 헷, 아모리 ,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아이 성의 멸망과 여리고성 멸망의 소식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모든 왕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려고 합니다.

연합군을 만들었습니다.

우린 성경을 읽을 때 이미 누구편입니까?

이스라엘 편이지요.

그러니 이들 연합군을 나쁘게 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봅시다.

지금 여러분이 돈으로 구입한 집에 어떤 사람이 와서 여러분들을 쫓아낸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다.

애굽에서 종노릇하든 자들이 여호와 종교를 앞장세워 자기 땅을 뺏으려고 합니다.

어느 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러니 연합군을 결성하여 저들을 물리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중에 배신하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기브온 거민입니다.

오늘 본문 대부분이이 기브온 거민에 관한 사건입니다.

기브온 거민은 히위족속입니다.

여호수아11장19절을 보면 “기브온 거민 히위 사람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쳐서 취한바 되었으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브온 거민들은 히위족속입니다.

이들도 역시 진멸대상입니다.

그런데 이들 거민들은 이스라엘의 소식을 듣고 전쟁할 마음이 없습니다.

이들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자신들이 살길을 찾습니다.

방법은 자신들은 이 땅 거민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하지요. 이들도 소식을 다 알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 사람들은 다 진멸하라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꾀를 내었습니다.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그 발에는 낡아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하고 길갈 진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먼 곳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과 약조를 하자고 합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7절을 봅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중에 거하는 듯 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약조할 수 있으랴”

이에 대해 기브온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합니까?

곧바로 자신들을 종이라고 낮춥니다.

그리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먼 곳에서 왔다고 하면서 여호와의 명성을 다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물을 보여 줍니다. 떡과 포도주 가죽부대, 그리고 옷과 신발.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합니까?

여호와께 묻습니까 묻지 않습니까?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묻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볼 때에는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브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여호와께 물을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이게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여호와께 묻지 않았다는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당연히 여호와께 여쭈어 보아야 할 문제였다는 말입니다.

이유는 지금 여호와의 전쟁, 즉 진멸 전쟁을 펼치고 있는데 죽이고 살리는 것을 자신들이 임의로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잠시 기생 라합으로 돌아가 볼까요?

기생 라합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정탐꾼을 숨겨둠으로 정탐꾼의 약속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본문 어디에서 여호와께 묻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내 뱉어진 말은 곧 여호와께서 그렇게 해 버리십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가나안 땅 사람들을 진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건마다 여기에 관심 없음을 보입니다.

기생 라합이 자신들을 숨겨 주었기에 라합을 살려 준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지금 기브온 거민들의 사건도 비슷합니다.

납작 엎드립니다.

여호와의 명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 명성이 사실임을 인정합니다.

이들은 지금 살기 위해서 자신들을 종으로 까지 낮춥니다.

물론 이들은 다른 족속들과 같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런 방법 외에는 자신들이 살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해 보았자 전멸당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꾀를 내어 마치 히위사람이 아닌 양, 아주 먼 다른 지역, 가나안 거민이 아닌 양 꾸면서 거짓말을 합니다.

결국 이들의 꾀가 이스라엘을 속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살길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스라엘을 속인 사실을 3일후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이들을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회중들이 다 족장들을 원망했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 여호와의 명이 우선이니 이들을 진멸하자고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자신들에게 임할까 두려워합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들이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자신들의 멸망입니까?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스라엘로 인해 기브온 거민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말대로 종이 되었습니다.

나무패며 물 긷는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나무패며 물 긷는 자 즉 종이 되려고 항복했습니까?

그렇습니다.

기브온 거민들의 마음은 종이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 날수 있다면 종이 되던 무엇이 되든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영영히 하나님의 집을 위해 나무패며 물 긷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린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의 본색을 한 번 더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차지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여호와 전쟁에 참예하게 된 이유는 이들이 의로워서 아닙니다. 이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잘 순종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긍휼, 그 은혜로 인해 이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 왔고 여호와 전쟁에 참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기브온 거민들을 보면서 자신들이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를 다시 배웁니다.

바로 영원한 종이 되어도 좋습니다라는 태도로 이들은 약속의 땅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구원받은 자는 어떤 모습일까요?

바로 이 두 가지를 모두 보여주는 자가 구원받은 자입니다.

자신은 진멸 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자요 또한 자신이 영원한 종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자가 구원받은 자입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아는 것도 포함되어 있고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고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고 있으니 이런 마음의 태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19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1-10절을 보면 삭개오가 나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부자입니다.

세리장이란 세리들 중에 대장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니 권력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여기 동네도 그렇지 않습니다.

세관장 중에 가난한 사람이 있을까요?

삭개오도 부자입니다.

이 사람의 관심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했습니다.

소문은 들었겠지요.

그런데 키가 작습니다. 사람은 많습니다.

방법을 찾았습니다.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나무 아래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고 나무위에 있는 삭개오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러자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예수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머물려고 들어갔다고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삭개오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겠지요?

사람들로부터 어떤 평판을 듣고 있는지 아시겠지요.

삭개오 집에 예수님께서 머무심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은 삭개오와 다른 인간 즉 죄인이 아니라고 스스로 밝힙니다.

자신들 집에 머문다면 죄인의 집이 아니라 의인의 집에 머문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수군거림도 없겠지요.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 (즉 남을 속여먹은 일) 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삭개오의 무슨 행동이 구원을 가져다주었습니까?

본문에 보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다는 말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까?

그러면 우린 이렇게 반박할 수 있지요.

적어도 재산을 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토색한 것은 사배로 갚고 즉 율법에 기록한 대로 값아 주고 남은 돈을 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 정도는 되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도대체 구원을 얻으려면 재산의 얼마를 나누어 주어야 합니까?

사람들의 관심은 이런 것에 있지요.

사람들은 이 본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삭개오처럼 자신이 부자이지만 나무에 까지 올라가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고 또한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 주고, 율법대로, 즉 말씀대로 살 때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본 본문 기브온 거민들이 어떠했습니까?

구원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속일수도 있어야 하고 뿐만 아니라 종이라도 되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칠 것입니다.

이게 마귀의 가르침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주어질 것 같으면 누가 이렇게 못하겠습니까?

물론 부자청년은 못하겠지만...

그러나 자기 구원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들인데 이정도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구원이란 이렇게 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방식을 취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방식 속에서 구원을 주셨습니다. 즉 그의 행위와 상관없이 잃어버린 자 속에 포함된 자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즉 삭개오를 잃어버린 자로 만드셔서 예수님께서 오신 취지를 보여주는 도구로 삭개오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삭개오 주변의 사람들은 잃어버린 자가 아닌 자들임을 , 즉 구원받지 못한 자임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삭개오 주변 사람들은 처음부터 토색한 일이 없습니다.

자기 권세를 이용해 돈을 번적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자신들을 의롭다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삭개오를 죄인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 사건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이야기 아닙니까?

예수님의 구원은 너무 불합리한 구원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 인간들의 상식에 부합한 구원이란 애당초 없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고 영접했고 재산 절반 나눠주고 율법대로 토색한 것은 네 배 값아 준다고 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행동해서 구원받는다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구원받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저들은 잃어버린 자가 아님으로 구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위한 구원이란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증거하기 위한 구원만 있을 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 즉 십자가의 피 공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가를 증거하기 위한 구원입니다.

삭개오의 구원은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하는 구원입니다.

주님이 자신의 피로 삭개오를 구원하며 이 피에 상관없는 자는 구원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기브온 거민의 구원을 통해 성도가 평생 십자가 지신 예수님만 자랑할 수밖에 없는 자임을 보여줍니다.

평생 종으로 살더라도 주님의 피로 인해 감사할 수 있는 자가 성도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피에 관심 있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가에 관심 없습니다.

삭개오나 기브온 거민이 자신의 행동에 관심 있었습니까?

관심 없습니다. 단지 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오직 주님의 처분을 기다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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