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강해 23

푸른 섬 2011. 11. 22. 23:39

 

작성일 : 11-11-20 13:47
여호수아강해 2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5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일도..




음성설교

여호수아23장1-16

불교에서 십계를 말합니다.

이것은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나누는 10가지 경지를 말합니다. 미계(迷界)의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아수라계, 인간계, 천상계와 오계(悟界)의 성문계, 연각계, 보살계, 불계이다.

지옥계는 죄업을 짓고 매우 심한 괴로움의 세계에 난 중생이나 그런 중생의 세계. 또는 그런 생존. 남섬부주의 땅 밑, 철위산의 바깥 변두리 어두운 곳에 있다고 한다. 팔대 지옥, 팔한 지옥 따위의 136종이 있다고 합니다.

아귀계는 계율을 어기거나 악한 일을 저지른 귀신들이 모여 사는 세계를 이릅니다.

축생계는 천태종에서, 생전에 저지른 악한 일에 대한 대가로 죽은 뒤에 짐승이 되어 괴로움을 당하는 세계를 이릅니다..

인간계는 과거에 오계나 중품 십선의 인(因)을 닦은 이가 나는 세계를 이릅니다.

천상계는 십선(十善)을 닦으면 간다고 하는 하늘 위의 세계를 말한다. 십선은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불살생(不殺生-생물을 죽이는 일을 하지 않는다), 불투도(不偸盜-남의 물건몰래훔치지 않는다), 불사음(不邪婬-남편과 아내 아닌 자와 음탕한 짓을 하지 않는다), 불망어(不妄語-진실되지 못한 허망한 말을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불기어(不綺語-도리에 어긋나며 교묘하게 꾸며대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불악구(不惡口- 남에게 욕을 하고 험담을 하여 성내게 하고 번뇌롭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불양설(不兩舌-서로에게 다른 말을 하여 이간질하지 않는다), 불탐욕(不貪慾-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갖고 싶어 하고 또 구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불진에(不瞋恚-자기 뜻이 어그러지는 것을 노여워하지 않는다.), 불사견(不邪見-올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생각이나 의견을 내지 않는다. )을 지킴을 말합니다.

성문계는 이치를 깨달아 아라한(생사를 이미 초월하여 배울 만한 법도가 없게 된 경지의 부처)이 된 경지를 이른다.

연각계-십이 연기(범부로서의 인간의 괴로운 생존이 열두 가지 요소의 순차적인 상관 관계에 의한 것임을 설명한 것. 진리에 대해 무지(無知)한 무명(無明)을 근본 원인으로 하여 행(行-중이나 수행자(修行者)가 정하여진 업(業)을 닦는 일. 특히 고행(苦行)을 이른다), 식(識- 대상을 다르게 아는 마음의 작용.), 명색(名色-이름만 있고 형상이 없는 마음과, 형체가 있는 물질. 정신적인 것을 ‘명’, 물질적인 것을 ‘색’이라고 이른다.), 육처(六處- 중생이 모태에서 눈, 귀, 코, 혀, 몸, 뜻의 육근(六根)을 갖추어 태어남), 촉(觸- 주관과 객관의 접촉 감각. 근(根)과 대상과 식(識)이 서로 접촉하여 생기는 정신 작용이다.), 수(受-외계의 대상을 받아들여서 느끼는 작용. 근(根), 경(境), 식(識)이 화합한 촉(觸)으로부터 생긴다), 애(愛-좋아하여서 탐하는 마음.), 취(取- 탐애(貪愛)에 따라 일어나는 집착. 온갖 번뇌를 통틀어 이르는 말), 유(有), 생(生), 노사(老死)가 순차적으로 있게 된다고 한다)의 이치를 관찰하여 홀로 깨달음을 얻은 경지를 이른다.

보살계-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성인의 경지를 이른다.

불계-불교의 모든 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된 경지를 이른다, 더 이상 번뇌가 없는 깨끗한 세상이다-입니다..

어떻습니까? 마음에 듭니까?

아마 요즘같은 세상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좀 간단히 해라. 뭐라 그리 복잡하노?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좀 쉽게 해달라고 하겠지요. 어렵게 도 닥아서 천국가는 방법 말고 쉽게 가는 방법을 말해 달라고 합니다.

신라시대(617-618)원효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가르침의 목표도 천국, 즉 극락입니다.

‘아미타불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이 원효 신앙(信仰)의 결론입니다. 한 중생도 남김없이 모두 구제하겠다는 부처님의 무한한 원(願)과, 안으로 참회(懺悔)하고 나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중생의 자각(自覺)이

나무아미타불로 만납니다. 중생이라는 한계상황 속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중생, 이들이 바로 원효가 부처님의 법을 전해야할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절망할 수밖에 없는 중생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믿는 것’밖에 없습다.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의 원력(願力)을 믿는 것입니다. 즉 아미타불은 이들의 메시아. 구원자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얻는 쉬운 방법을 내어 놓았지요. 자신이 믿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이 귀한 시간에 왜 불교이야기를 하겠습니까?

불교의 가르침의 내용을 보면 우리마음에 속 들어요.

이것이 아니면 저것 골라 먹어면 됩니다.

노력하고 싶어면 노력하고, 안되면 믿으면 되요.

어디서 많이 듣는 논리 아닙니까?

오히려 오늘날 한국교회수준보다 한참 더 높은 수준을 말하지 않습니까?

바리새인들보다 수준이 더 놓아요. 왜냐하면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했어요.

즉 자신들은 십선을 행할수 없음을 인정했어요. 그래서 아미타불을 믿음으로 구원얻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행위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만을 강조합니다.

참 쉽지요. 이런 사상이 성경으로 흘러 들어와 성경말씀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지요. 인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수 없어.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 주셨지. 그래서 우린 그 십자가의 피로 구원얻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우린오직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 그러면 천국간다. 이렇게 되겠지요.

혹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방종하니까 자기 마음대로 살수 있으니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인간이 할만큼은 해야한다고 가르치겠지요.

만일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성경의 그 많은 하나님의 명령들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지 않겠습니까?

자. 그러면 한번 봅시다.

불교사상이나 방금 제가 언급한 교회의 주장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라는 이름과 아미타불이라는 이름이 차이가 나이죠. 공통점은 둘다 믿음으로 극락, 천국을 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공통점이 또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아무타불이나 예수님이나 모두가 다 누구를 위해 있습니까?

중생들.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나 아미타불이나 십계나, 십선이나 십계명이나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인간 구원과 관련되어 설명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배치된 것들입니다. 세상의 구조자체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심지어 주체가 없다라고 해 버립니다. 나라는 자체가 없다고 말을 해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무아의 경지.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왜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합니까?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극락을 위해서이지요. 그러니 인간들이 아무리 도를 닦고 기도하고 노력해도 결국 자기구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중들은 떠나버리잖아요. 자기 구원만을 위해 산속으로 말입니다. 얼마나 이기주의입니까? 자기밖에 몰라요.

그렇다면 여호수아 23장과 이것이 무슨 상관있습니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장로들, 두령들, 재판장들, 유사들을 불러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셨다.

어떻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를 위해 싸우셨다고요. 너희.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다고 하지요. 이렇게 되면 앞선 불교의 주장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은 주장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말이 같다고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이렇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끝까지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셔야 하지요. 물론 끝까지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스라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즉 인간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첫째 아담안에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스라엘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아시지요.

창세기32장22절 이하를 보면 야곱이 얍복강가에 홀로 남았습니다.

형 에서로부터 어떻게 살아 남을까를 고민고민하는 중이었지요.

이때 어떤 사람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날이 새도록 야곱이 이기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태어날때부터 지고는 못사는 사람입니다.

태어 날때도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 났지요. 지가 먼저 나와 보겠다고.

결국 장자권을 자신의 방식으로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형 에서로부터 죽음에 처해 있는 중입니다.

이런 와중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여전히 싸움에 있어서는 둘째라면 서러워할 사람입니다.

물론 이 싸움은 힘겨루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라헬을 얻기 위해 몇 년을 고생했습니까?무려 14년입니다. 이정도로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고 마는 성격입니다. 한 성깔하지요.

레아와 결혼했으면 그냥 살면 되는데 꼭 자신이 원하는 아내를 얻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야곱이 지금 싸움에서 이기고 있지요. 그래서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를 쳐 버립니다.

평생 절름발이로, 막대에 의지해 살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떠나 가려고 합니다.

그러자 야곱이 붙들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축복해 달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자신이 싸움 대상이 누군지 이제야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입니다.

호세아 12장3,4절입니다.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그래서 축복을 해 주셨는데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시 이스라엘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야곱에서 이스라엘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자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akse시 참이스라엘입니다.

따라서 지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것입니다. 결코 육적 이스라엘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인간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상이 다 깨어져 버립니다.

여기에서 인간들이 생각하는 메시아. 구세주 사상이 우상이 됨이 드러납니다.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너희들이 제비뽑아 얻은 땅, 즉 여호와께서 주신 땅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남아 있는 자들을 쫓아 낼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냥 여호와께서 땅을 차지하게 해 주십니다라고 하면 될 터인데 단서를 붙입니다.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말라 너희 중 남아 있는 이 나라들 중에 가지 말라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을 가르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에게 절하지 말라.

역시 십계명의 반복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한 사람이 천명을 쫓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또 이렇게 말합니다. 스스로 조심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빠져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의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

이 말씀에 의하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율법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을 차지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이라는 말이됩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존재하는 자들로 만들어 졌습니다.

결코 말씀이 이스라엘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을 어기면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땅에 임한다고 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왜 가나안 땅,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오셨습니까?

언약을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의 극락생활, 천국생활을 위해 가나안 땅에 넣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항상 이런 식입니다.

자신들을 위한 천국.

그런데 여호수아가 여기에 대해 반대합니다.

우리를 위한 천국은 없다라고 말입니다.

오히려 언약을 어기고 우상을 섬기면 진노를 당해야 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스라엘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이런 이스라엘 되고 싶습니까?

아무도 이런 이스라엘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냥 복주는 여호와 하나님. 복 받는 이스라엘이 되기를 원합니다. 천국가기를 원하지 저주받기를 원하는 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물론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고 설명을 해 놓았습니다. 그래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생각해요.

천국 보내 주기 위해 오셨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불쌍해서.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접근할 때 어떻게 접근합니까?

살기 위해 접근합니다. 구원받기 위해 접근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접근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십만볼트에 감전되어 다 죽었습니다.

마태복음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서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귀가 이렇게 시험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이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게 되게 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네게 주리라.

마귀가 이렇게 예수님을 시험했지요.

우리 인간이 마귀의 자식입니다.

그러다 보니 마귀의 생각과 동일한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께 접근하는 이유가,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고 믿는 이유가 마귀의 생각과 동일한 생각으로 그렇게 합니다.

결국 나로 지금 천국생활을 영위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구세주라면 나를 구원해 주시고, 이 땅에서 천국생활을 누리게 하시고 죽어서도 천국가게 해 주세요.

바로 이것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셨다고 생각도 못해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이 세상이 종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이 세상은 불로써 심판 받아야 되는 땅이라는 것으로 판명난 것임을 알지 못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꾸 구원에 대해, 천국에 대해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이 세상이 심판받아 마땅함을 드러내기 위해 보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21장33-46절에 보면 이 말씀이 나옵니다.

종을 보내니까 종들을 다 죽였어요. 그래서 주인이 아들, 상속자를 보내었습니다. 아들 말은 들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농부들이 상속자를 죽이고 유업을 자신들이, 포도원을 자신들이 차지합니다.

이것을 비유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농부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악한 농부들은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주라고 말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죽으심은 세상이 불로 심판받아 마땅함을 보여주는 증거물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접근해서 구원얻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이런 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자입니다.

그러면 구원얻는 자가 없습니까?

있습니다. 누가 구원을 얻습니까?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받은 자만 구원을 얻습니다. 이런 사람은 천국가지 위해 예수님께 접근하지 않습니다. 떡을 얻기위해, 돈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 접근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권세와 명예를 얻기위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이름을 위해 사나 죽으나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만을 전하기 위해 믿게 된 것입니다.

믿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 사람의 관심은 천국이 아닙니다. 이 사람의 관심은 깨끗한 세상이 아닙니다.

이 사람의 관심은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돌아가신 분이 온 만유의 주님이심을 전하는 것 , 그것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사람은 십자가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더라도 여호수아의 설교를 당연하게 받아 들입니다.

그래요. 우린 결국 저주받아야 하고 진멸당해야 하는 자들이군요.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시는 군요.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자들이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여러분 마음껏 주님께 사용받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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