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세이

목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푸른 섬 2009. 8. 24. 21:32

목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행동하거나 말하거나 글을 쓸 때 반응을 내심 기대한다.

특히 목사가 설교할 때 목사의 마음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지 않는 목사도 있는가? 있다면 은혜라.


그러나 목사란 자는 항상 기대감을 갖고 설교를 한다.

그 기대란 부정적인 기대가 아니라 긍정의 기대이다.


그래서 설교단에서 내려 오면 성도들이 은혜 받았습니다.

말씀이 참으로 말씀대로 잘 풀었네요.

정말 성령님이 함께 하심을 느꼈습니다.


이런 말들을 듣게 되면 목사는 뿅 간다.


얼마 전에 나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목사님 설교 너무 성령의 능력속에서 되어 졌습니다라고 말이다.


반응이야 자기 속에서 나오는 것을 내 놓는 것 뿐이다. 어떻게 반응하든 그거야 받은 자 소관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반응에 살고 죽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목사는 증인일 뿐이다.

그 증거의 내용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주님되신 예수그리스도밖에 없다.


받은 것을 전할 뿐이다.


그런데 목사는 못된 버릇이 있다.

자꾸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의 가르침은 가르침을 부인하는 가르침이다. 성령님께서 하심을 알려주는 가르침이다. 단절이 있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목사는 이 가르침을 부인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을 긍정하는 가르침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람이 주님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목사의 종이 된다. 목사의 패거리가 된다.


이 맛에 목사는 산다.


라멕이 우두머리가 되었을 때 얼마나 짜릿했겠는가?


이 짜릿함을 오늘날 목사들은 누리고 있고 꿈꾸고 있다.


그래서 자신만의 꿈을 펼칠 장을 마련하려고 오늘도 새벽기도로, 성경공부로, 전도로 땀흘리며 수고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자꾸 십자가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한다.

미칠 지경이다. 돌아버릴 지경이다.

십자가밖에 자랑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도 자랑하고 다른 것도 자랑하면 좋을텐데.


왜 성경을 그렇게 기록했는가? 성경이 원망스럽다.


그렇다. 모른척 하고 넘어가자.

십자가도 자랑하고 다른 것도 꿈을 꾸고...


십자가는 참으로 참을 수 없는 단어다.


십자가는 언젠가는 그 본심을 꺼집어 내 버리고 마는 말씀이다.


목사는 십자가를 이용하는 자가 아니라 십자가에 이용당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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