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하

강해34

푸른 섬 2009. 11. 23. 10:09

다윗의 용사

사무엘하23장8-39


교회든 세상이든 영웅이 필요합니다.

교회든 세상이든 영웅이 되려고 합니다.

교회든 세상이든 영웅이 대접받습니다.


제가 그저께 2012 영화를 보았습니다.

물론 극장가서 본 것은 아닙니다.


흐릿한 화면에 그것도 한국말이라고는 하나도 나오지 않고 외국어만 두 개가 나오는 영화.


그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와 노아홍수를 비교해 보면 어떨까?

아주 재미 있습니다.


물론 물로 온 지구가 덮힙니다.

물론 화산도 폭발하지만 궁극적으로 물로 온지구가 덮혀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물이 죽습니다.


그러면 누가 살아 남는가?

극비리 진행된 지구 멸망대비 계획에 따라 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운 좋은 사람, 그리고 사람들에의해 택함을 받아 공수받은 동물들이 막대한 돈을 들여 만든 최 첨단 방주에 들어가게 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감독이 무슨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참 재미 있는 것은 노아 홍수 심판후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과 정반대로 행한 바벨탑을 쌓은 인간들의 모습과 이 영화는 너무나 닮았다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심판과 정 반대로 지구의 멸망과 구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즉 노아 홍수심판은 인간의 죄로 인한 심판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입은 노아와 그 가족들만 구원을 얻습니다.

물론 동물들도 알아서 방주로 들어 옵니다.


그런데 2012에서는 자연적 현상입니다. 정보를 가진 소수의 인원들이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멸망에 대비하여 준비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온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면서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노아를 미쳤다고 했습니다.

방주 문이 닫힐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준비되어져야 할 배 하나가 덜 완성 되어 그곳에 탈 사람들이 그냥 수몰되어야 하는데 후손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고 설득한 한 젊은 과학자의 설득으로 그들도 대부분 방주에 올라 탑니다.


물론 이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방주에 타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런 가운데 인간들의 뜨거운 사랑은 쉼 없이 보여 줍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영웅이 있습니다.

누가 영웅입니까?


모두가 다 영웅입니다.

살아남은 인간 모두가 다 영웅들입니다.


모두가 다 영웅입니다.

이들은 모두 살아남을 만 했습니다.


돈이 많았던 권력이 있었던 운이 좋았던 어찌되었든 이들은 살아 남을 만했고 이들은 보통 사람들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노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노아는 영웅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보기에 별거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비웃지 않겠습니까?


노아는 비밀리에 방주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다 보고 알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2에서의 방주는 은밀히,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곳으로 들어가 멸망을 피하는 것입니다.


분명 주님은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물로 지구가 다시 멸망한다고 합니다.


철저하게 성경 말씀과 정 반대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구원은 은혜 받은 자가 얻는 것이 아니라 돈있고 권력있고 운 좋은 자가 구원을 얻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다윗의 용사들이 나옵니다.

다윗의 용사들을 이렇게 기록하는 것을 보면 우리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왕권을 행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용감한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이게 상식이고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을 뒤엎어 버립니다.

전쟁에서, 싸움에서 승리한 이유는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한 구절이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어 버립니다.

그러면 또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용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느냐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인간의 상식으로 보시면 안됩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보면 당연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셨다. 그러나 다윗의 용사들이 있었기에 그 승리가 가능했다라고 말입니다.


요즘도 우리가 늘 듣는 말 아닙니까?

인간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가?


그 인간이란 다름아닌 영웅.

영웅없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가 아닙니까?


믿음 없는 자가 하는 말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봉사하지 않고 내가 기도하지 않고 내가 전도하지 않고 내가 헌금하지 않으면 교회가 어떻게 돌아가겠는가라고 말입니다.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겠느냐고 말입니다.


이들은 꼭 자신을 영웅 자리에 집어 넣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주인공 자리에 집어 넣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이해되고 받아 들여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서 무릎을 탁 치면서 말합니다.


그렇지 하나님도 이렇게 일하시지.

영웅. 용사들이 있었지.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보면 딱 지옥 갈 자들이 보는 성경관입니다.


왜 다윗의 용사들을 말할까요?

그 이유는 다윗의 용사들이 분명 필요했습니다.

이들을 앞장세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음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우린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힘도 없는 쫄병들을 내세워서 하시면 더 극적이지 않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이게 인간 생각입니다.

주님께서 일 하실때에는 그 사람이 용사든지 왕이든지 쫄병이든지 노예든지 어느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그가 노예가 되었든지 왕이 되었든지 주님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인간들은 영웅이 되기를 바라고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거합니다.


십자가는 눈에 거슬립니다.


자신이 영웅이 되고 주인공이 되는데 방해물입니다.


만일에 십자가가 눈앞에 있으면 결코 자신이 영웅이 될 수 없는 것을 압니다.

십자가가 눈앞에 있으면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치워버려야 합니다.


갈라디아서4장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내게 하려 함이라”


사람에게 대한 열심, 이것을 끌어 내기 위해서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열심, 사람 사랑. 사람 영웅 만들기, 자신 영웅 되기, 자신이 주인공 되기.


사람의 세상에 십자가 지신 예수님은 없어져야 합니다.


인간들은 꿈을 꿉니다.

인간만이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은 짜증납니다.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영웅, 사람들과 함께 죽어줄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인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 수많은 다윗의 용사들을 기록한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헛빵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8장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 상 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하는 이유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것은 바로 영웅을 구하는 것이지요.

누구처럼. 

이방국가 처럼.


그래서 우리도 땅땅 거리며 살아보자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의아스럽게도 사무엘 하 끝부분에 와서 용사들을 열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 같이 왕과 용사들이 앞장 서서 너희의 싸움을 싸운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친히 싸움을 하셨음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신앙인은 다른 눈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눈이 없는 자는 눈 뜬 소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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