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스가랴 강해 8

푸른 섬 2010. 12. 13. 21:42

속 시원해 하시는 주님

스가랴6장1-8

만화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두 산 사이에서 네 병거나 나옵니다.

그 산은 놋 산입니다.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셋째 병거는 백마들이, 넷째 병거들은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습니다.

 

병거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우리 어린아이들은 잘 모를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탱크 같은 전쟁 무기입니다.

 

옛날 전쟁 영화를 보면 많이 볼 수 있지요.

 

수레바퀴에 톱니같은 것을 달거나 창같은

 것을 달고 말이 앞에서 끄는 것입니다.

물론 군사가 말을 몰겠지요.

 

4절에 보면 우리들이 궁금하듯이

 스가랴 선지자가 질문을 합니다.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5-7절을 봅시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흑마는 북편 땅으로 나가매 백마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 남편 땅으로 나가고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다니고자 하니 그

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당에 두루 다니더라”

 

그러면 이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8절에 나옵니다.

“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

 

북방으로 간 병거 즉 흑마와 백마가 끄는 병거가

 여호와의 마음을 시원케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편 땅 으로 간 어룽진 말이 끄는

 병거의 일도 동일하겠지요.

 

그러면 건장한 말이 끄는 병거의 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여호와의 마음을 시원케 하였다고 하고

 나머지 말들의 소식은 말씀하지 않습니다.

 

말씀하지 않더라도 우리들은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

 

이들도 조만간 여호와의 마음을

시원케 할 소식을 전할 거라고 말입니다.

스가랴서는 성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전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듭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 아니면 죄용서함을

받는고 등 이런 생각이 먼저 들 것입니다.

 

요즘은 건물을 지어놓고 성전이라고 하지요.

 다 이런 생각과 관련되어져서 하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좀 이상합니다.

 

제가 해석하는 본문들이 다 이상합니다마는.

두 놋산이라는 것은 5절에 의하면 주님이 계신

보좌가 있는 곳으로 보여집니다.

 

네 병거는 영들인데, 이들은 주님이

보내신 심판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마음을 시원케 하기

위해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병거들입니다.

주님이 참 고약한 분 아닙니까?

 

심판을 해야 속이 시원하다는 것입니다.

북방 땅은 바벨론을 가리켜 말씀하시는데

 바벨론은 멸망시켜야 속이 시원하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13장을 봅시다.

 

아모서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입니다.

2-16절을 봅시다.

 

“너희는 자산 위에 기호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그들로

존귀한 자의 문네 들어가게 하라 내가 나의

 거룩히 구별한 자에게 명하고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들을 불러 나의 노를 풀게

 하였느니라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 같으니 곧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

무리가 먼 나라에서 , 하늘가에서 왔음이여

곧 여호와와 그 진노의 병기라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그러므로 모든

손이 피곤하며 각 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잡혀서 임산한

 여자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은

불꽃 같으리로다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별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것이며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케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그들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같이 각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나 만나는 자는 창에 찔리겠고

잡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겠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은 그 목전에 메어침을 입겠고

그 집은 노략을 당하겠고 그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

 

19-20절을 봅시다.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 그 곳에 처할 자가 없겠고

거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며 아라비아

사람도 거기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 목자들도

그곳에 그 양떼를 쉬게하지 아니할 것이요”

 

이렇게 바벨론을 심판하실 때 속이 시원하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하나님이 아닙니까?

 

우리 사람들이 기대하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 아니잖아요.

 

우리 사람들이 기대하는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 아닙니까?

 

심판을 하시고 기분좋아하시는 하나님,

아 속이 시원하다고 하시는 그런 하나님은 아니잖아요.

 

이런 하나님을 좋아하는 사람 있나요?

그런 사람은 이상한 사람입니다.

 

아마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일 것입니다.

천국에 속한 사람이겠지요.

 

그렇다면 그 심판의 기준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 심판의 기준이 있어야 하겠지요.

 

요한계시록17장입니다.

함께 봅시다. 1-8절입니다.“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지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

 

12절입니다.

“네가 보던 열뿔은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바벨론의 심판 기준은 무엇입니까?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린양과 더불어 싸움을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자들입니다.

바벨론이라는 역사적 나라로 대표되는 이들의 심판 이유는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기준이 어린양의 피입니다.

 

어린양의 피와 함께 하는 자는 구원이요

어린양의 피를 핍박하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심판을 받은 바벨론은

 어린양을 핍박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반드시 심판하셔야만 주님의 속이 시원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렇게 하실 때 주님의 주되심이 제대로 드러납니다.

요한복음 5장29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죽은 자들, 다 흙으로 돌아갔는데 주님되신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다 부활시키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지옥보낼자들은 반드시 지옥보내고 천국

보낼 자는 반드시 천국보내시는 것이 주님의

 주님되심을 제대로 드러내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분, 그 예수님을

주님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이 계획이셨습니다.

 

어린양의 피 공로를 입은 자들은 영생으로,

그 은혜를 입지 못한 자들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구약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됩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바벨론의 존재이유도 알게 됩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불순종해서

 멸망당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야만 했는지도 알수 있습니다.

 

바벨론 나라가 왜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갖고

부유한 나라로 있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린 세상을 다 안 사람이 됩니다.

 

이 세상에 왜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가 존재하고,

 사람이 존재하며, 이들이 왜 돈을 의지하는 지도 알게 됩니다.

 

이 속에서 십자가의 피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살아가는 이유도 알게 됩니다.

왜 이런 상황을 유발시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하시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삶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는 말입니다.

 

말씀은 분명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그것을 인정하느냐는 문제가 있지요.

어떻습니까?

 

이것을 인정하고 살아갑니까?

바벨론 같은 사고를 가진 자들은 신앙에 대해서도

그 탐욕을 마음껏 발산합니다.

주님을 전하는 삶을 살자고 말입니다.

 

이들은 십자가 사건에 왜 일어났는지를 모릅니다.

왜 바벨론이 멸망당해야 하는 지를 모릅니다.

 

바벨론이 멸망당하는 것이 속 시원하다고

하시는 여호와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이들의 관심은 자신의 속이 시원함을 얻 는 것입니다.

찝찝한 것은 견딜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을 붙들고 싶습니다.

자신의 삶이 근거가 된 구원을 꿈꿉니다.

어린양의 피는 애시당초 관심 없습니다.

 

피공로는 손에 잡히지고 않고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것을 보이는

세계의 것으로 환치기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믿는 것 같지요.

 

그런데 이런 자들이 일어나야 주님은 속이 시원합니다.

그래 그래, 그렇게 해야만 너희들이 저옥갈

 대상자들임이 확정되니 속이 시원하다는 것이지요.

지난 주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옥갈 여건을 충분히 마련해서 지옥보낸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하실 때 주님의 의미가 제대로 보여집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오늘 본문을 두고 설교한 설교를 보게 되었습니다.

 

본문해석은 주석에 나오는대로 장황하게 해석해 놓았습니다.

해석은 예수님을 언급합니다.

 

그런데 그 해석이 어디로 적용되는지 아세요.

지금 자신의 교회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속 시원하게 해 주실 것을 믿자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발한 적용아닙니까?

 

이렇게 적용하려면 이렇게도 적용할수 있겠지요.

여러분 지금 골치아픈 일이 있습니까?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근심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세요.

 

여호와의 마음을 시원케 한 여호와의 영들,

 그 병거들이 우리들의 마음도 시원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희한하지 않습니까?

 

말씀이라는 것이 이렇게 능력있습니까?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속속들이 다 꺼집어 내십니다.

바벨론의 눈에 유다가 보였습니다.

 

자신들의 힘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자신의 탐욕을 이룰 기회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이들은 여호와의 심판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완벽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관심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자신의 사업, 자녀, 건강.

 

이게 바벨론이 관심가졌던 분야 아닙니까?

 

그러니 성경을 보아도 자신의 탐욕을 이루는

말씀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을 깨끗이 청소하셔야 속이 시원한 분이 주님이십니다.

'스가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가랴 강해 10  (0) 2011.01.02
스가랴 강해 9  (0) 2010.12.27
스가랴 강해 5  (0) 2010.11.21
강해 4  (0) 2010.11.14
24102010 스가랴 강해 1  (0) 2010.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