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로마서강해 11 3장1-8

푸른 섬 2012. 12. 2. 16:03

로마서강해 11 3장1-8

사람은 거짓되고 하나님만 참되시다




음성설교

로마서3:1-8

표면적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또한 표면적 할례가 할례가 아닙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 즉 성령의 할례를 받은 자가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참 유대인은, 즉 참 이스라엘은 누구입니까?

분명 역사적으로 보면 혈통적 유대인이 유대인이지만 이 말씀에 의하면 이들이 유대인입니까 아닙니까?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면적 유대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자 즉 구원받은 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아9장25-26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암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깍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심판주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데 할례 받은 자도 벌하시고 할례 받지 못한 자도 벌하십니다.

할례 받은 자들은 유대인입니다.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이방인들은 할례 받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을 받고, 유대인들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습니다.

이렇게 되면 유대인들이 육신의 할례를 받은 것은 이방인들은 모두다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은 선언하기 위한 육신의 할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은 더 나아가 유대인들의 육신의 할례는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전히 심판 받아 마땅한 자들임을 드러내기 위한 육신의 할례가 됩니다.

예레미아6장10절을 보면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하지 아니하니”

귀에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의 육신적 할례가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인해 , 그리고 우상숭배로 나타나는 행위들로 인해 북쪽에 있는 바벨론 제국에 의해 잔인하게 진멸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예레미아를 통해 외치는 여호와의 훈계를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레미아의 외침을 어떻게 듣습니까?

욕설로 들어요. 즉 예레미아를 통해 하는 여호와의 훈계를 욕으로 들으니 이들의 행동이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예레미아를 죽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을 누가 했다는 말입니까?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 했다는 말입니다.

특히 이들은 북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앗수르에게 멸망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남 유다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자신들에게 전혀 교훈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바알 섬기기 바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오직 아세라 생각뿐입니다.

그러니 예레미아의 예언을 좋아하겠습니까 싫어하겠습니까?

당연히 싫어하지요.

예레미아가 좋은 소리 하지 않잖아요. 무슨 이야기를 해요. 유다의 죄악을 지겹도록 반복해서 이야기 해요. 그러니 이 예언을 듣는 유대인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죽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예레미아가 오히려 죄를 범한 유다를 위해 회개합니다. 심판하지 말아 달라고 언약에 근거하여 부르짖습니다.

이러한 예레미아를 죽이려고 합니다.

예레미아 입에서 나오는 말이 너무 듣기 싫습니다.

이들은 육신의 할례를 받았지만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예레미아의 외침이 듣기 싫은 소리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3장1절에서 하는 말입니다.

육신의 할례로는 심판을 피할 수 없다면 육신의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은 도대체 이방인들과 비교에서 나은 점이 무엇입니까?

이방인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당연히 없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어차피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았다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이가 없잖아요.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방인보다 나은 점이 범사에 많다라고 합니다.

그러니 성령 받은 사도바울과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이 많이 다르지요.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할례 받은 유대인들의 장점은 없지요. 그러나 성령 받은 바울에게는 범사에 많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 무엇이 그리 이방인에 비해 장점입니까?

그 이유를 3절부터 설명하고 있어요.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예레미아서를 잠시 살펴 보았지요.

남유다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습니까?

안 지켰지요. 이들은 우상숭배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레미아도 죽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대신 담당해서 기도하는 예레미아를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았고, 그것으로 인해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미쁘심이 폐해집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폐해집니까?

결코 그럴 수 없지요. 오히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다 거짓되다는 것이 드러나고 오직 하나님은 참되심이 증거되어집니다.

예레미아10장10절을 보면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오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

진노를 내리시는 분이 참 하나님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이렇게 되면 진노를 당하는 인간들은 모두가 다 죄인이 되겠지요.

율법을 맡은 자들인 유대인, 할례를 받은 자들의 유익이란 다름 아닌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범사를 통해 말입니다. 평소 그들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 율법이 적용되어졌지요. 이 율법에 근거하여 이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할례 받은 유대인들은 자신들 모두가 다 거짓된 자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면서 심판하신 하나님이 참되신 하나님임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본 예레미아서도 아니고 다른 본문도 아니라 시편 51편4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함께 시편 51편을 보겠습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와서 다윗의 죄를 지적할 때 다윗이 내뱉은 시입니다.

1,2절은 은혜를 베푸시어 자시의 죄를 깨끗이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자신의 죄과를 안다고 합니다.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지요.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사건을 두고 생각한다면 내 죄는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것입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자신의 죄가 항상 자신 앞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이 나는 죄인이다가 아니라 5절을 보면 자신이 죄악 중에서 출생했고 어머니는 죄 중에서 자신을 잉태했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죄 덩어리로 보고 있지요.

그런데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죄가 누구에게 범한 죄입니까? 우리아입니까 아니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입니까?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입니까?

내가 주께만 범죄했다고 하지요. 정말 엄청난 말 아닙니까?

우리아의 아내를 범했으면 우리아의 아내에게도 죄용서 빌고, 우리아에게도 죄용서 빌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주께만 죄를 범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곧 인간들이 생각하는 죄와 다윗이 생각하는 죄가 같다는 말입니까 다르다는 말입니까? 다르다는 말이지요.

다윗은 자신을 죄 덩어리로 인정하면서 오직 그 죄는 누구께만 범한 것입니까? 주께만 범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본문이 오늘 로마서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실때에 의로우시다 하시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로마서3장4절에서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그렇다면 도대체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간단하지요. 사람은 다 거짓되고 오직 하나님만 참되시다고 고백하게 만드는 사건이 바로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사건입니다.

다윗의 유일한 범죄를 꺼집어 내어 유대인이 범사에 나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의 나음이 어떤 뜻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폐할 수 없습니다. 그 예로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사건을 끌고 들어온 것입니다.

결국 다윗이 우리아 아내를 범한 범죄는 인간은 모두가 다 거짓되다, 죄인임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동시에 인간의 죄는 오직 주께만 범하는 죄임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다윗의 죄를 용서하고 의롭다 하실 수 있고, 오직 하나님만이 다윗을 깨끗하다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주님께서는 자신이 참으로 의로우신 분이시면 오직 참되신 분이시고, 주님만이 승리자이심을 증거하십니다.

이것이 할례를 받은 율법을 맡은 유대인의 나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이방인들에게는 있어요 없어요.

자, 이렇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요.

5절에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지금 다윗의 불의가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은 불의하시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냈는데 불의한 자를 심판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의로운 분이신가라고 하지 않겠느냐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일방적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만일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면 세상을 심판하실 수 없지 않는가라고 반문합니다.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려버립니다.

여러분 이 말씀에 동의가 됩니까?

동의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합리적이지 못하고 논리적이지 않잖아요.

그러면서 7절에 다시 또 역접접속사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5절에서도 그러나 를 사용했지요.

7절에서 왜 그러나 를 사용했을까요?

다윗의 사건을 두고 인간들은 모두가 다 죄인으로 드러났고 오직 하나님만이 참되심을 증거하는 사건이었다면

분명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더 드러냈는데 내가 왜 죄인처럼 심판을 받느냐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느냐라는 주장입니다.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

이런 말을 하면서 사도바울을 비꼽니다.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었다면 우리도 죄를 지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되겠네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이 꼭 이렇게 들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뭐라고 합니까?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왜 그들이 정죄 받는가?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율법을 맡은 유대인들, 할례 받은 유대인이 죄를 범함으로 모든 인간이 죄인으로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참되심을 증거하게 한 행위라고 말할 때 정죄 받는 자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도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자라고 조롱한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주님께서 꺾으신 뼈, 곧 예수님의 죽으심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은 모든 인간들이 죄인이며 모든 인간들이 오직 하나님께만 범죄한 인간임을 드러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예수님이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주님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임이 드러나고 오히려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만이 주님이심을 친히 증거하셨습니다.

성도는 이것을 증거하는 자입니다. 그러니 조롱당할 수밖에 없고 미움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욱 높이기 위해 우리도 죄를 짓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누구 앞에 나올까요?

사도 바울처럼 성령 받은 자가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전할 때 저들은 이렇게 조롱합니다.

너는 죄밖에 못 짓네.

이런 소리를 들어야 예수님만이 의로우신 분임이 증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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