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로마서강해 15 5장1-11

푸른 섬 2013. 1. 13. 14:54

로마서강해 15 5장1-11

그의 피, 성령



음성설교

로마서5장1-11

인간들이 신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성전을 만들어 하나님이나 신에게 제사를 드릴까요?

사람들이 신을 찾는 이유는 구원받기 위해서입니다. 축복받기 위해서입니다.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으로부터 인간들이 저주를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저주를 피할 수 없습니다.

5장 1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로마서에서 그러므로라는 단어가 47번정도 나옵니다. 굉장히 많이 사용하는 접속사입니다.

그래서 앞뒤 문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그 다음에 하시는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문맥을 이해한다고 해서 은혜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라는 단어는 4장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지난 주 살펴 보았지요.

믿음이라는 것이 아브라함의 소유가 아니라, 믿음이 아브라함을 끌고 다니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창조해 내신 것이지요.

여기에 이어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번역을 또 애매하게 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라고 되어 있지요.

이렇게 번역을 해 놓으니 성경책 읽은 사람들은 항상 믿음의 주체를 믿는 자기 자신으로 간주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의 중심이 나인데, 성경번역을 이렇게 해 놓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번역하는 사람이 믿음이라는 것을 자신이 행할 수 있는 믿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을 한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가 화평을 누리자 라고 번역했다면 인간의 본성을 꺽을 수 있는 본문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번역하던 저렇게 하던 접근 방식이 자기로부터 출발하는 해석은 언제나 자기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니 말씀을 접근할 때 이미 본인이 결론을 내려놓고 접근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이익의 재료로 만 보게 됩니다.

9절에 보면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라고 나오지요.

1절과 병행구절이라 보시면 됩니다.

1절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표현을, 9절에서는 그의 피,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서 우리 인간이 행한 것이 있습니까?

없지요.

오히려 6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율법에 순종하지 못하는 때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경건하게 살지 않을 때, 즉 하나님을 비난하고 살 때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때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우리들은 뭘 했는가? 연약하여 율법에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비난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런 자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우리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지요. 연약한 자가, 경건하지 않는 자가 예수님에 대해 살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리고는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세상 사람들의 죽음과 비교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죄인 일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믿음으로 라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한번 보세요.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의 확증이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따로 챙길 수가 없겠지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의 확증의 죽으심이니 말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전하기 위해 죄인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려면 반드시 인간들은 연약해야 하고, 경건하지 않아야 합니다. 죄인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오는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즉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라는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근거가 인간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아브라함을 보세요. 아브라함의 행함에서 믿음이 나옵니까? 아브라함에게 없는 믿음을 로마서4장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2절에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고 하지요.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믿음을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은혜라고 하지요.

자 그런데 믿음으로 ,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합니까?

의롭다 하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의 입증, 확증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사랑이 되느냐 말입니다. 즉 의롭다 하심이 도대체 무엇을 가져 오기에 사랑이 되느냐 말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1절 끝에서 말씀하고 있지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이것을 제대로 표현해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화평은 무엇과 대조를 이룹니까? 처음 9절이 병행구절이라고 말씀드렸지요.

9절에 보면 진노하심에서 구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바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는 것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진노가 무엇입니까?

로마서4장15절을 보면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합니다.

3장5절에는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로마서2:8절에서는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합니다.

2장5절에 보면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라고 합니다.

1장18절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9장22절에는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12:19절에서는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13:5절에서는 같은 진노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하나님의 진노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20장7-10절을 보면 진노의 진수가 나옵니다.

“천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그들의 비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이미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25장46절에 보면 영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30절에서는 바깥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운다고 말씀하셨고, 12절에서는 신랑이 처녀들을 알지 못한다고 표현합니다.

이 말씀은 세례요한이 마태복음3장10절에서 이미 말한 내용입니다.

“이미 도끼나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2절에서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하나님의 진노를 아시겠습니까?

불과 유황 못에 던져져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 것을 하나님의 진노라고 합니다.

그러니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사실 진노축에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계시록14장10-11절을 보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시록 20장에 나온 말씀입니다.

계시록11장18절에서는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계시록6장16-17절에서는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요한복음3:36절에서는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이정도만 보아도 진노하심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 불과 유황 못에서 세세토록 고난, 고통, 고문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러니 땅에 내려지는 진노는 사실 이것과 비교할 수 없는 진노이지요.

로마서5:9절에서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면서 미래를 말합니다. 계시록에서 하시는 말씀이 맞지요.

그런데 로마서5장1절에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다라고 표현함으로서 여기에서는 현재형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러니 주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성도는 하나님과 화평을 지금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장차올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화평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앞서 찾아본 말씀 중에 로마서4장15절에 나오는 율법은 진노를 이룬다는 말씀이 어느 정도 엄중한 말씀인지를 아시겠지요. 그러니 율법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말씀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를 아시겠습니까?

율법을 끌고 들어오면 이렇게 엄중한 하나님이 진노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에게 말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곧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합니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보게 되면 독생자의 영광이 나오지요. 독생자의 영광이 어떤 식으로 땅에서 구현됩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구현되지요.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립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이 땅에서는 어떻게 구현될까요?

환난 중에 즐거워하고, 이런 즐거움이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인내 중에 즐거워 하고, 이런 즐거움이 연단을 만들어 냅니다. 연단 중에 즐거워하고 , 이런 즐거움이 소망을 만들어 냅니다. 결국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드러나지요. 왜 소망이 마지막일까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반드시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환난을 당하니 당연히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구원을 소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소망이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기 때문입니다. 즉 내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이 소망은 부끄럽지 않다는 말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을 내가 만들어 내었다면 이 소망을 헛된 소망이지요. 그런데 믿음을 주님의 피로 만드셨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주셨습니다.

환난도, 인내도, 연단도, 소망 어느 하나도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피 흘리신 주님되신 예수님께서 부어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령을 누구에게 부어 주셨습니까?

그것을 6절 이하에서 재차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입니다.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계속 화목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9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11절에서 “그 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즐거워 한다는 표현이2절에서 그리고 3절, 그리고 11절에 세 번 등장하지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라고 하십니다.

이 즐거움이 왜 있는지 아시겠지요. 진노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진노를 모른다면 결코 환난이 즐거움이 될 수 없어요.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성도에게 주어졌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주어졌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간들이 자기 행위를 끄집어 낼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환난 받는다고, 인내한다고, 연단되었다고, 소망을 가진다고 자랑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습니다.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어 의롭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나는 환난 받는다. 나는 인내한다, 나는 연단을 받는다, 아는 소망을 가진다 이런 소리를 아예 하지 못하도록 성령을 부어 주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어떤 것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만들어서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만을 자랑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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