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로마서강해 19 7장1-6

푸른 섬 2013. 3. 3. 15:48

로마서강해 19 7장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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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로마서7장1-6

지난 주 연약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사람들이 꿈꾸는 구원은 연약하지 않는 상태로의 구원을 꿈꿉니다.

예수님 십자가 피로 구원받고 성령을 받았으니 이제 더 이상 연약한 자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들은, 교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죄를 나눕니다. 원죄와 자범죄, 그리고 성품죄.

원죄는 아담이 범한죄고, 자범죄는 자신이 범한 죄라고 가르칩니다. 성품죄는 죄를 짓고자 하는 생각이라고 합니다. 저는 원죄와 자범죄만 알고 있었는데 설교준비하면서 살펴보니 성품죄라는 것도 있었어요.

원죄는 예수님의 피로는 씻어줍니다. 그러나 성품죄와 자범죄는 자신이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왜 이런 주장을 할까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자신은 얼마든지 회개할 능력은 있다는 주장이지요. 십자가의 피도 자신의 회개 앞에서 그 능력을 발휘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범죄를 범하면 어떻게 됩니까 라고 질문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로마서를 보면서 죄를 따로 분류하는 말씀이 있었습니까? 성경어디에도 죄를 따로 분류하는 곳은 없습니다. 어떤 죄를 범해도 천국 못 간다는 말씀이 있지요.

예수님의 피가 원죄만 용서했다는 말씀이 있었나요? 없지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할까요? 자신의 몸 때문입니다.

영혼은 어떻게 해결되겠는데 몸이 해결이 안돼요. 영혼은 예수님의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체가 문제이지요. 그래서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든지, 아니면 영과 혼까지 분리해서 영은 타락하지 않았고 영의 영향이 혼, 즉 생각에 까지 미쳐 결국 육체가 말씀에 순종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지요. 이들의 공통점은 결국 자신은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십자가가 눈앞에 밝히 보이는 자들이 아니라 십자가는 과거일 뿐이고 이젠, 성령의 힘과 나의 순종만이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성화를 주장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몸이 자신들의 몸이라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제가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리고 부활하실 때 거기 있었던 사람 손들어 보라고요. 없지요. 아담이 선악과 따먹을 때 우리 거기 없었어요.

그런데 로마서를 쓰는 사도바울도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자신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인이라고 해요.

성령 받은 사람만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성령 받지 못한 자들은 이것을 믿지 못해요.

믿음이 없으니 행위를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심이 완벽한 삶으로의 구원이 아니라 연약한 상태로서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약한 상태로 구원의 이유는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적 싸움 속에 두심으로 말미암아 승리하신 분이 누구신지를 전하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로 자기 백성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피아노로 말하면 조율이지요. 가장 소리가 잘 나도록.

그런데 문제는 이 싸움 속에 둔 것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할까요?

말씀에 의하면 의인은 없지요. 말씀대로 사는 인간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악합니다. 율법대로 살 인간 없습니다. 율법 앞에서는 죄인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죄를 더 지을 뿐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선언입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끊임없이 십자가의 피만을 전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이 말씀이 십자가의 피 복음이 아니라 자신들을 신격화 시켜주는 말씀으로 보려고 합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조차도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주 강한 펀치를 한방 날립니다.

7장1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여러분이 죽어 버리면 법이 어떤 기능을 할 수 없지요. 아마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는 이 말에 동의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유는 영혼은 여전히 법의 지배를 받게 되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 사람은 몸만이 율법의 지배를 받았다고 주장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영혼의 구원은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물론 여기에서 영혼은 그들이 주장하는 영혼구원입니다. 영혼이 법에 매여 죄인이었기에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을 통해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이라고 해 버립니다. 영혼, 육 분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율법과 상관없어집니다. 죽은 자에게 율법이야기 해 봤자 소용없지요.

왜 이 말씀을 하실까요?

너희는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주님의 답답한 심정을 아시겠습니까?

오죽하면 이런 예를 들겠습니까?

우리의 법도 그렇잖아요. 남편이 죽었다. 그래서 다른 남자에게 가면 문제 없잖아요. 죽은 남편이 깨어나나요.

지금 성도의 상태가 이런 상태라는 말입니다.

제발 율법이야기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은혜아래 있으니 죄를 더 짓자 이런 소리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더 짓자라고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동시에 거룩하게 살자라는 말씀도 율법지키자라는 소리로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새 생명 가운데서 사는 삶을 율법에 순종하는 삶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런 말씀이었는데 도무지 상대가 알아듣지를 못해요.

물론 이 말씀은 알아들을 사람만 알아 들을 수밖에 없어요.

제가 이렇게 설명한다고 해서 믿어질 것 같지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설명해서 믿어진다면 성령님이 필요 없지요.

여기에서 우리들이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지요.

인간들에겐 율법이 거머리처럼 따라 다닌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뗄 수가 없어요.

구원받은 성도라 하더라도 뗄 수가 없어요.

그런데 뗄 수가 없는데 성도와 성도 아닌지가 이 거머리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요.

한쪽은 어떤 식으로 대처하나요. 죽었다라고 대처하고, 한쪽은 살았다라고 대처합니다.

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형제들은 가만히 있었지요.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 암에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자기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했어요. 형제들이 한 것이 뭐에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으로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다. 그 이유는 형제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씀을 갈라디아서2장19,2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에 육체가운데 산다는 표현이 나오지요. 이렇게 하신 이유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 즉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을 말씀합니다. 우린 열매라고 하면 자꾸 무슨 생각을 떠 올립니까?

성령의 열매이지요. 그래요. 성령의 열매가 어디에 나오나요?

갈라디아서 5장22-23절에 나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먼저 성령이라는 분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26절을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15장26-27절에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성령 받은 사도들이 예수님만을 전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예수님일까요?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바로 이 일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열매는 무엇을 증거할까요?

네. 그렇습니다.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피능력을 전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22-23절 말씀이 참으로 재미 있는 말씀이지요.

성령의 열매를 금지할 율법이 없다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율법이 증거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지요. 성령이 증거하시는 분도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율법과 성령을 한꺼번에 성도에게 퍼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를 통해 십자가만 전하도록 만들어 내십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인간들은 또 율법으로 받지요. 그래서 율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께서 만들어내신 것, 즉 주님께서 만드신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기에 이런 사랑을 받은 자는 십자가만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 6장14절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자기 속에 사는 분은 예수님이시기에 십자가 밖에 자랑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5절에서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아담안에서 무슨 짓을 해서 그 열매는 사망을 위한 열매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성령으로 살기 때문에 ,즉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십자가만 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6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율법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율법조문의 묵은 것으로는 주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나오는 자가 있다면 이런 자는 주님을 섬기는 자가 아닙니다.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가 성도입니다. 즉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가 참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자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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