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로마서강해 47

푸른 섬 2013. 10. 27. 12:51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로마서1217

오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악입니까?

나를 해롭게 하는 것이 악일까요?

인간들은 모든 문제를 항상 나 중심으로 해석을 합니다.

성경을 읽어도 설교를 들어도 중심은 언제나 자기 자신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악은 17절에 나오는 선한 일과 반대 되는 일입니ᅟᅡᆮ.

 

그렇다면 무슨 일이 선한 일일까요?

 

로마서에서 어떤 일을 두고 악이라고 합니까?

122절을 보면 너희 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선(ajgaqov")하시고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따라서 이 세대의 특징은 곧 하나님의 선과 상반되는 특징, 즉 악한 세대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지난번 로마서122절 설교를 할 때 말씀드렸지요. 로마서122절에서 사용된 단어는 아이온 aijwvn 이고 마태복음1239절은 게네아 geneav 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35절에서 사용한 단어를 게네아로 번역했습니다.

단순히 한 세대를 로마서로 넘어 와서는 이 세대를 영원으로 가두어 버리지요.

물론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239절에서 말씀하신 말씀도 동일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 당시 악하고 음란한 세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그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또한 사도바울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함으로 여전히 인간적인 세대는 다르지만 모두가 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세대 속에 놓여 있음을 고정시켜 버립니다.

물론 갈라디아서14절에서는 사도바울역시 게네아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따라서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은 곧 악한 세대 속에 속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악이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에 의하면 악한 세대 속에 속한 자들의 특징이 나옵니다.

이들의 특징은 율법 행위에 속하여서 율법대로 살자고 주장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예수님을 믿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도 믿고 율법대로도 살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악한 세대의 특징이 참으로 희한하지 않습니까?

 

율법대로 사는 것이 어떻게 악한 세대에 속한 자들입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해 율법대로 살자고 주장하는 자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자고 주장하는 자들이 곧 악한 세대에 속한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의 주장이 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당연히 율법대로 살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신앙을 누가 이어 받았는고 하면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이어 받았습니다. 저들은 하나님 믿고 율법 지키기를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고 율법 지키기를 주장했습니다. 오늘날도 이들을 이어받은 자들이 교회 안에 가득 있지요.

 

예수님을 믿으니 율법을 지키자라고 말입니다.

 

이런 자들이 악한 자들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하나님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좋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전하는 거짓 복음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복음입니다.

 

갈라디아서110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는 이유는 거짓 복음은 틀림없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와 동시에 참 복음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음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 들어 보셨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음. 사람들은 복음 전하는 것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복음이라 생각합니다.

복음이란 단어 자체가 영어로 굿 뉴스 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당연히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을 보면 모두가 다 사람을 좋게 하는 복음 뿐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에서는 이런 복음이 악한 자들이 전하는 거짓복음입니다. 참 복음은 하나님은 기쁘시게 하는 복음, 즉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도록 하는 것이 참 복음입니다.

 

그런데 악한 자들이 끊임없이 악을 전하지요. 여기에 대해 사도바울은 저주를 퍼부어 버립니다.

 

분명 자신은 로마서1214절에서는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했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18절에서는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 온 천사라도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다른 복음 전하는 자들을 저주 속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말씀이 충돌이 되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항상 사람입장에서 해석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좋게 하는 식으로 성경을 해석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말씀이 충돌이 일어나지요.

 

그러나 갈라디아서 18절에서 말씀하시는 저주 자체가 로마서에서는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도모하는 모습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그런 괘변이 어디 있느냐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일에 다른 복음을 전해도 축복을 받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선을 도모하는 모습입니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실상 이런 말이야 말로 진짜 저주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도 바울은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말씀대로 살아야 하지요.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복음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듣기 좋은 소리를 해야만 선을 도모하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선은 십자가와 관련 있습니다. 십자가와 상관없는 것은 모두가 다 악입니다.

 

지난주 제가 다른 곳에 가서 마태복음20장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 비유를 설교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악한 자들이 나옵니다.

어떤 자들이 악한 자들인고 하면 주인이 한 시간 일한 자에게 한 데나리온 주는 것을 보고 자신은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한 데나리온씩만 주니 이들이 억울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악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믿고 기도 하고, 전도하고, 예배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하고, 십일조 하고, 연보하고, 선교했으니 천국은 당연히 갈 것이고, 나보다 일을 많이 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지요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악한 자들입니다. 오히려 죽을 때 예수님을 믿은 강도는 천국 갔습니다.

 

십자가의 피 공로를 멸시하는 자들이 바로 악한 자들입니다.

 

베드로가 마태복음1927절에서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이런 질문을 한다는 자체가 악한 자임을 예수님께서 포도원 주인 비유를 통해 미리 앞당겨 말씀해 주셨습니다.

 

신명기293-4절을 봅시다.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이 어려워요.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귀를 오늘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다라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와야 할까요?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을 인간 없어요. 아멘 했다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미 깨닫는 마음을 주셨다는 증거 아닙니까?

 

악한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까지 여호와께서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광야에서 멸망당한 세대들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여호와께서 깨닫는 마음을 주시지 않았으니 어떻게 깨닫겠습니까? 그러니 원망밖에 나오지 않잖아요.

 

그렇다면 광야 세대들은 이 말씀에 대해 어떤 반응이 나와야 합니까?

 

5,6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너희에게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제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신 줄 알았다고 해야 할까요? 9절에 보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했으니 이제 언약의 말씀을 지켜야지라고 결심하고 지키려고 노력해야 할까요?

 

광야에서 그렇게 체험을 했어도 소용없어요.

왜냐하면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말씀을 주시면 말씀대로 살려고 덤빕니다.

분명 깨닫는 마음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다라고 말씀하시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는 자임을 알아야 하는데 악한 자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지켜 행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시면 인간들의 관심은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에 가 있지요. 그러니 앞서 말씀하신 294절 말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다시 로마서 1217절로 돌아와 봅시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씀하셨지요.

도대체 누가 악을 행합니까?

로마서에 의하면 다윗이 악을 행하는 자였지요. 그런데 그 악을 행하는 자가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용서함을 받은 자가 무엇을 전하기에 악한 일을 당합니까?

 

자기의 행위를 전하지 않고 십자가만 전하고 십자가만 자랑하니 악한 일을 당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자들이 오히려 악한 일을 당합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니, 즉 십자가만 자랑하니 오히려 악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성도는 끊임없이 악한 일만 당하다가 끝내는 인생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는 모습입니다.

 

갈라디아서 524절을 봅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육체 안에는 정욕과 탐심 등 별의 별 것이 다 들어 있지요.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이런 별의 별것 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그래, 이제 변화 되어 더 이상 정욕 없어, 더 이상 탐심 없어 . 이런 식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별의 별짓을 다하지요. 정욕 없애려고, 탐심 없애려고.

백날 해 보세요. 없어지지 않아요.

 

이 말씀의 뜻은 인간 육체로부터 나오는 어떤 것도 십자가 앞에서 죄로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아닌 자들은 이게 안돼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나오는 정욕과 탐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자임을 온 몸으로 고백하는 자입니다.

 

악한 자들은 자신의 몸에서 정욕과 탐심이 나오지 않고 율법을 지키는 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니 선한 일을 도모하는 사람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한심한 존재들이지요.

죄인이라는 것이 뭐가 자랑이라고 자꾸 죄인이라고 하느냐 말입니다.

 

사도바울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은 자신은 죄인이라는 말 외에 달리 무슨 말이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도 선한 일을 도모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악한 일을 당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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