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새 예루살렘 스가랴2:1-13

푸른 섬 2007. 7. 24. 15:37
 

새 예루살렘 

스가랴2:1-13

요한계시록21장2,3절을 보겠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이 신부가 어떤 지 봅시다.

9절 끝부분입니다.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보이니라”

 10,11절입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로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12절을 봅시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사실 이것은 에스겔이 본 성입니다. 이 성 가운데 무엇이 있는고 하면 성전(겔48:8)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계시록에서 나타난 성 가운데는 성전이 없습니다.

22절입니다.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실상 지금 스가랴 선지자가 본 예루살렘성과 성소는 바로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시는 예루살렘성과 성소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실상 예루살렘성은 주님의 피로사신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성소는 계시록 말씀대로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성전이 되십니다.


여기서 잠시 예루살렘성의 화려함을 봅시다.

계시록 21장18-21절입니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홍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 째는 청옥이요 열 둘째는 자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주님의 피로 사신 성도들이 얼마나 보석같은 존재들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얼마나 귀하냐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공로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양의 피공로를 무시하고 자신이 귀한 존재가 되었다고 난리법석을 떠는데, 분명한 것은 새예루살렘이 보여주는 것은 분명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의 성전되심의 능력을 철저하게 증거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에 보면 이곳은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들어 옵니다.

들어 온다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 그곳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정도 해 놓고 우리가 오늘 읽은 분문 스가랴 2장을 보겠습니다.

2장에 예루살렘을 척량하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척량도 하기 전에 다른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예루살렘에 사람이 거하리니 그 가운데 사람과 육축이 많으므로 그것이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죄로 인해 황폐해진 예루살렘성이 다시 세워지는데 그곳은 척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며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21장 17절을 보게 되면, 이 척량이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상 바벨론 포로 후 돌아와 예루살렘성을 재건하고 성전도 재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은 이미 자신의 나라가 이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고, 성전도 자신이 세우시는 성전이 따로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스가랴의 예언 말씀은 이것을 겨냥해 있습니다.


이제 그럼 새 예루살렘은 어떤 특징을 갖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곳에 거하는 사람은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은 경험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든지 다른 나라가 되었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게 되면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고 하십니다.

성소에서 행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심판과 죄용서 함입니다. 성소되신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까?


성소되시는 분이 이 땅에 오시니 인간들이 난리 법석을 피웁니다.

이 분을 제거 하자고 덤벼 들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버립니다.


성소가 자기들 가운데 있으니 견딜 수가 없지요.

죄인의 본성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의 죄악을 감추려면 성소되시는 분을 제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소를 제거하려고 한 자들은 다름 아닌 성전이 자기들 가운데 있다고 주장하고, 율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빌라도도 여기에 함께 가담합니다. 이방인들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소 되시는분이 친히 자신의 몸으로 희생제물이 되시고 자신의 몸이 죄용서 받는 곳이 되셨습니다. 이것으로 성소 되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어지는 예루살렘성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에베소서 2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22절을 봅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예루살렘 성이라 하지 않고 성전이라고 표현합니다.

왜 그럴까요?


계시록에서 말씀하시는 예루살렘성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하나 저렇게 표현하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결국 계시록에 보면 새 예루살렘이 전능하신분과 어린양이 거하시는 곳이 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들이 생각해야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한 사람이 척량한 새 예루살렘의 성격 말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이렇게도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서론에서 말씀드린 예루살렘성의 찬란함, 보석들, 열두 진주 문 등, 화려함, 웅장함 등등, 마치 이 땅 왕이 사는 곳과 같은 상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천국은 정말 너무너무 찬란한 보석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보석들로 가득차 있더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계시록 22장1-2절을 언급합니다.

한번 볼까요?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러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생명나무는 분명 예수그리스도인데 사람들은 이런 본분도 문자적으로 해석하려고 덤벼 듭니다.


과거에 이런 부흥목사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천국을 보여주고 지옥을 경험하게 해 준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나오게 해서 환상을 보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사람들은 몸짓을 합니다. 생명 나무를 따먹는 시늉을 합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입신이라고 하죠.


그래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말에 미혹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있는 대로 말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이 안되는 것이 천국이 진주로 가득차 있다는 말이나, 아니면 열 두 가지 실과가 있다는 표현을 그런식으로 보면 엉터리가 되고 맙니다.


분명 생명나무는 주님 되시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표현은 에덴동산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루살렘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덴동산적인 표현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 외에 또 다른 생명 나무가 있을까요?

그게 말이 안됩니다.

그러니 이미 영생 속으로 들어 왔는데 또 다시 생명과일 따먹으며 영생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죠.


그곳에 생명나무 밖에 없습니다. 이 말은 오직 생명되시는 어린양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예루살렘성이 각가지 보석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천국이 보석으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천국인데 보석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보석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필요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천국에 대해 제발 엉뚱한 생각을 하시지 마세요.


새 예루살렘이 각가지 보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동일하게 주님의 피로 구원을 얻은 자들이지만 저들은 각자의 모습으로  어린양의 피를 선전하고 증거하는 자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천국에 가서도 모두가 각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점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은 모든 주님의 택한 백성들은 완벽하게 어린양의 피를 제대로 드러낼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천국에 가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곧 지금 복음이 전파되어 지는 곳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에베소서 2장20-22절을 읽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만드신 새 예루살렘성은 결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소 되신 그분이 직접 일어나심으로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믿어야 합니다.


성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 납니까? 심판과 죄용서함이라고 했죠.

그러니 십자가 지신 예수님 속에서 주님께서 택한 백성은 죄용서를 받아 새예루살렘의 한 부분을 점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린 상당히 뿔따구가 납니다.


거껏해야 새예루살렘 성의 벽돌 한부분이란 말인가?


이것이 성도에겐 너무나 크고 놀라운 은혜로 다가오며, 감사로 다가오며, 어린양께 찬양드릴 수 밖에 없는 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구속받지 못한 죄인들은 이런 불만을 말합니다.


내가 기껏 새 예루살렘 성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역할. 더러워서 예수 안 믿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의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까?

그리고 누구를 위해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오직 성소되신 예수님의 증인으로, 예수님을 위해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을 위해, 자신의 탐욕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살아가는 자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런 축복, 성소 되신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복을 받은 자로 사시기를 바라니다.

퍼즐의 한 조각, 어쩌면 아무것에도 쓸모 없는 존재 같지만, 그런 존재로도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참으로 감사할 수 있는 성도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피로사신 정말 존귀한 보석입니다.

이 보석은 반드시 보석으로 만들어 주신 그 피만을 증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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