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대제사장 슥3:1-10

푸른 섬 2007. 7. 24. 15:38
 

대제사장

스가랴3:1-10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서 있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고소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기 때문입니다. 너무 더러운 죄인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여호와의 사자가 사단에게 말합니다.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사단이 더러운 죄인의 모습을 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고소하는 것에 대해 왜 이렇게 사단을 책망합니까?


그 이유는 사단이 무엇을 모르는고 하면 여호와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정결케 하신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즉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더러운 죄악을 깨끗이 사해 주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여호와의 긍휼하심, 죄 용서하심의 은혜를 그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더러운 죄인은 고소당해야 되죠. 정죄함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절에 보면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여호수아에게 내가 네 죄가를 제하여 버렸다고 하십니다.

그러시고는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61장 10절을 보면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 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죄용서함을 받은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7장9-17절을 봅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에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장로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시록4장 10절에서는 면류관을  보좌 앞으로 돌려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니 죄과를 사함받고 아름다운 옷을 입었고 정한 관을 �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로마서 8장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성도란 결코 정죄함이 없는 자들입니다.

결코 사단으로부터 고소당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행위를 보면서 스스로 정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는 사단으로부터 정죄 당하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 책망을 받고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알아가며 그 사랑에 감사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자꾸 하는 말이 너의 꼴이 그래서 어떻게 천국 가겠느냐. 어떻게 그런 모습이 예수님을 믿는 모습이냐고 고소합니다.


그래서 사단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무효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속지 마세요.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의 어떠한 죄악도 깨끗하게 하십니다.


이제 7절을 보겠습니다.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실상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실패자입니다. 그는 결코 여호와의 율법을 지킬 수 가 없습니다.


그러니 결국 참된 대제사장, 율법 지키는 분이 따로 오신 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고 그 뜰을 지킬 것을 말씀하십니다.

참된 대제사장이 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아 다른 동료들 모두가 다 예표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대제사장 여호수와와 다른 동료들은 장차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대제사장으로 오실 분은 어떤 모습으로 오십니까?

종의 모습이요 순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종은 어떤 종입니까?

이사야 42장 1-4절을 보게 되면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그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

계속해서 6-8절을 봅시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종을 세워 결국 영광을, 찬송을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은 어떤 의밀까요?

이사야 11장1절을 보게 되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분이 무슨 일을 하시는가?

철저한 심판으로 악인은 죽이시고, 겸손한 자를 판단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순은 비록 아주 보잘 것 없어 보이고 연약한 모습이지만 놀랍게도 심판주님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한 돌에  일곱눈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돌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성령을 통해 죄가 사해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2장13-22절을 봅시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러니 한 돌에 일곱눈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성령을 통해 자기 백성들을 이렇게 만들어 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금 읽은 에베소서2장에서와 같이 십자가로 참된 화평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화평을 엉뚱한 것으로 찾지 마십시오.

십자가가 화평입니다.


사람들은 희한한 생각을 합니다. 기독교가 평화를 만들어 내는 종교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오해지요, 아니 곡해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에서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만드시어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백성들은 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죽어 버리고 주님이 대신 사시기 때문에 성도간은 서로 화평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했죠.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 많은 것을 기억하시기가 어려우실  것입니다.

그러니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성도는 주님의 십자가의 피 능력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의 행위를 볼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살아계신 예수님만 바라 보시고 믿으며 사는 자가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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