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스가랴14장12-21

푸른 섬 2007. 7. 24. 15:44
 

만국 중의 왕 여호와

스가랴14장12-21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든다거나 아니면 이방인의 편을 든다면 성경해석이 상당히 어려워집니다.


제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이유는 오직 자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2절만 보게 되면 마치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재앙을 받게 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지만, 사실 이 예루살렘은 새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입니다.


새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해도 좋겠습니다.

주님의 피로 세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에겐 반드시 하나님의 재앙이 임할 것입니다.

그 재앙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12,13절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속에서 썩을 것이요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이런 저주가 있겠습니까?


살아 있는데 살이 썩는다는 , 눈을 떠 있는데 눈 구멍속에서 썩는다. 혀가 입속에서 썩는다. 피차 서로 싸운다.


참으로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기에는 심해도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사실은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알면 알수록 성도에겐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알아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재앙이 시시하면 은혜도 시시하지 않겠습니까?


14절을 봅시다.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때에 사면에 있는 열국의 보화 곧 금 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요”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운다는 표현은 간단합니다. 유다 백성중 남은 자들이 주님의 몸된 교회에 함께 합류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이미 사도 바울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11장25-26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주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완악한 유대인들 중에도 구원을 얻을 자들이 생기고, 이방인들 중에서도 구원얻을 자들이 생겨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주님의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 모두를 합쳐 온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스라엘을 육적 이스라엘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이스라엘을 여전히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2장28,29절을 보면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유대인이란,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예레미아9장25, 26절을 보게 되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니라 하시느니라”


독특한 표현입니다.

이스라엘백성에게 할례를 행해라 하셔놓고, 그 할례가 이방인인든 이스라엘백성, 즉 유대든 상관없이 심판 기준이 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이방화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온 이스라엘의 구원이란 결코 구약성경에서 예언 된 바가 없습니다.

남은 자들만 돌아오게 됩니다.


이 남은 자들 속에 혈통적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이 함께 구원을 얻게 됨을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이 지금 우리들이 보는 스가랴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14절에서 금 은 의복이 심히 많이 모인다는 것은 이들이 누릴 복에 대해 세상적 방식으로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실상은 이들의 복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신약성경을 도무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도들이나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간 것을 면밀히 살핀다면, 오히려 스가랴서의 예언 말씀은 현재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 오히려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11,12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이 땅에서의 이런 모습이야 말로 참복을 누리는 영생의 삶을 보장받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이런 삶은 곧장 15절 말씀과 같이 이런 삶 속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에게는 어떠한 재앙, 저주가 임할 지를 다시한번 상기 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16절 말씀에서는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합니다.

초막절 절기는 레위기23장42,43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들 이방인들이 초막절을 지킨다는 것을 예루살렘은 치던 열국 중에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잔뜩 머금고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천하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한다고 하십니다.

당연하지요. 

이들이 여호와를 예배하러 오지 않기 때문에 은혜를 내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이미 하나님이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은혜를 내리시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에 복음이 전파될 때 일어난 일들이 그렇습니다.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오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 재앙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가운데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복음을 듣고 회개 하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이런 표현은 사실 스가랴서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입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아래, 재앙아래 머물 것입니다.

이것은 곧 지옥의 삶입니다.

살아서도 지옥이요 죽어서도 지옥으로 흘러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에는 완전한 거룩이 이루어집니다.

고린도 전서 6장9-11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성도는 지금 거룩한 존재입니다.

행실이 올바라서 거룩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거룩함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 못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 능력으로, 성령을 통해 우리를 거룩케 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데 인간들은 자꾸 행함으로 믿음을 카바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의 행함으로 거룩케 되려고 했습니까?


물론 성도가 십자가 안에서 치열한 영적 싸움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싸움은 어디까지나 내가 십자가의 능력으로 거룩케 되었다는 확정에 대한 싸움이지, 내가 더욱더 거룩케 되어가는 싸움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도는 영적전쟁을 하면 할수록 십자가의 피 능력을 더욱더 의지하며 신뢰하며, 그 사랑의 깊이를 알아가는 살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주님께서 이루신 일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 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변화되는 것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는 이미 거룩케 되었습니다.

이 거룩은 결코 인간의 수고와 땀이 베일 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우리들이 스가랴서를 보면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능과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성령으로만이 성도는 거룩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21절 끝에 보면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의 의미는 이미 앞서서 제가 설명을 다 해 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피로 이방인들과 유대인의 벽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이들 모두가 다 참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오직 자신들을 거룩케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으며, 그분이 이루신 일들을 항상 믿으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물론 이러한 삶은  주님께서 재림하신 이후의 삶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들은 십자가의 능력과 그 은혜가 얼마나 대단한 가를 알았습니다.

십자가 능력 밖에 있는 자들이 어떤 저주를 당하며 재앙을 당하는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능력 안에 있는 자들은 이미 거룩케 되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으로 그렇게 높았던 이방인과 유대인의 벽이 헐려 버렸음도 알았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주님되신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여 치열한 영적 전쟁을 벌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을 분은 예수님을 믿는 나 자신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신 십자가 지신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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