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마가복음12:18-27

푸른 섬 2007. 7. 24. 15:48
 

부활신앙이란 

                                       168.188장

마가복음12:18-27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느껴질까요?

예수님은 무조건 싫은 분으로 느낍니다.


예수님의 이름만 나오면 귀를 닫으려고 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말하면 더욱더 귀를 닫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사두개인이 나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예수님께 시비를 걸까요?


그 이유를 우리들이 알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2장 13절을 보면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자신들의 눈에서 사라지게 만들까,

어떻게 하면 저 예수란 자를 부끄럽게 만들까를 연구합니다.


이들에 왜 이렇게 예수님이 싫고 미울까요?


여기 계신 우리 어르신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좋습니까? 싫습니까?

예수님이 밉습니까? 좋습니까?


아마 모두가 좋으시다고 답을 하실 것입니다.

왜 좋은고 하면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에게 부활을 가져 오실 분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러하다 하실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은 부활이라고 하면 더욱더 와 닿는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 젊은 사람들은 보통 부활이라고 하면 까마득한 미래의 일이라 생각하면서 콧방귀 낍니다.

그러나 이제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은 부활이 더욱더 와 닿으시리라 생각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런분은 아직 젊으신 분들이시겠지요.

아직도 내가 살았고, 무엇이든지 할수 있다라고 하시는 분은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늙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늙으면 모든 육신의 기능들이 저하됩니다.

젊을 때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늙으면 그 똑똑함이 별 소용이 없어집니다.


젊을 때 제 아무리 건강했다 하더라도 늙으면 그 건강이 서서히 약해 집니다.


젊을 때 제 아무리 꿈이 많았다 할지라도 늙으면 그런 것은 물거품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을 때가 가까우면 영원히 사는 것을 찾습니다.


진시황제 아시죠.

진시황제가 왜 불로초를 찾아 헤맵니까?

그는 아주 젊은 나이에 중국천하를 통일하고 강력한 대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그에겐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늙어 죽어가게 되자  늙지 않는 약, 영원히 사는 약을 찾아 수많은 방법들을 동원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우리 같으면 어떨까요?


늙었지만 돈도 많고, 권세도 있고,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데 무엇이 그리 아쉬울까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부럽지요.

과거엔 이병철 회장을 부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어떻습니까? 죽습니다.

죽음앞에는 모든 인간이 다 평등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은 반드시 죽습니다.

죽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주님께 특별히 세우신 분들은 죽지않고 천국에 가셨지만, 살아서 주님이 오신다면 죽지 않지만.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이 사실에 직면하게 되면 부활이라는 것은 진시황제가 찾던 바로 그 기쁜 소식이 되겠지요.


우리 여기계신 어르신들은 어떻습니까?

부활이 정말 기쁜 소식입니까?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경 한 곳을 찾아 보겠습니까?

부활에 참예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굴까요?
로마서6:1-11절입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찌니라”


마가복음 12장에 나오는 부활장에서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었다면 구원을 얻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부활을 믿는다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이란 그런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방금 읽은 로마서 본문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자신이 죽으실 때 자신의 백성들을 함께 세례받게 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함께 죽음가운데로 참예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속으로 쏙 집어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때,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새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새생명 가운데 행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착한일 하는 것일까요? 교회봉사 많이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기도 많이 하는 것일까요?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만일 이런 것이 새생명가운데서 행하는 것이라면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이제 나이 들어 교회에 어떤 봉사를 할 수 있을까요?

그거야 젊을 때 했지. 그러면 지금은 무엇을 하십니까?


늙으면 돈도 마음대로 못써고, 헌금도 많이 하고픈데 그것도 안되고,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돈을 많이 벌어 놓은 분들이야 다르시겠지만.


그러나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어떤 봉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몸이 아파서 누우면 어떻게 봉사하고 어떻게 착한 일을 많이 하겠습니까?


새생명 가운데 행한다는 말은 우리가 착한일 하고 봉사 많이하고 기도 많이 하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습니까? 합니까?

좀 쉽게 질문 드리겠습니다.


죄를 여러분이 짓기 싫다고 해서 짓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럴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완전한 인간은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세월을 오래 사신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삶이 주님 보시기에 완벽한, 완전한 삶이었습니까?

아니지요.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노력했는데요.

노력했다는 말은 무슨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까?


나도 나름대로 주님의 일을 했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너무너무 미워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행함을 깡거리 무시하니 그렇다는 말입니다.

자신들의 기도와 열심과 봉사와 전도와 금식들을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피가 너희들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해 준다고 하니 화가 나는 것입니다.


부활을 주는 것은 좋은데 왜 나의 행위를 인정해 주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종노릇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결코 죄의 종노릇하는 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의가 왕노릇하기 때문입니다.


의가 왕노릇한다는 말은 성도의 삶이 항상 누가를 바라보고 믿느냐. 십자가 지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는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자신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십자가 지신 주님의 피흘리심의 공로로 자신이 살아간다는 것을 고백하는 자입니다. 기도를 해도, 봉사를 해도, 전도를 해도, 무엇을 해도, 혹 나쁜 짓을 해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행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바로 죄의 종노릇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11절을 보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찌어다”


죄라는 것은 우리가 윤리적, 율법적으로 행하지 못하는 것을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세리가 되어도, 창녀가 되어도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의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깨끗하고, 부지런하고, 봉사 많이 하고 기도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하여도 예수님의 피흘리심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자가 있다면 이런 자는 결코 부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부활을 믿는다고 해서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부활에 참여합니까?

바로 어떤 상황이나 어떤 형편에서든지 항상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자, 이런 사람은 나이가 젊든, 늙었던 이미 부활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한 말씀만 더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부활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부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런 자는 주님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은혜만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미 부활에 참여 한 자입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의 공로라고 생각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부활을 믿는다고 해도 부활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물론 심판의 부활은 되겠지요.


부활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요.


그러니 여러분, 부활을 믿는 자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신, 우리의 죄를 위해 피흘리신 예수님을 믿는 자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행위와 상관없이 여러분은 생명의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죽어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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