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마가복음 14:1-10

푸른 섬 2007. 7. 24. 15:50
 

쓸모없는 일?

마가복음 14:1-10                       346장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왜 예수님을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합니까?

여러분 마가복음을 13장까지 묵상해 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까?


자신들 속에 있는 것이 탄로났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사람들 보기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이웃을 자신들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말씀하시는 하나하나를 통해 저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요 이웃을 자신들의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 자로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드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이 분을 내어 서로 말합니다.


도대체 무슨 짓이냐? 무슨 의도냐?

왜 이런 헛된 짓을 하느냐?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수 있었겠도다 하며 여자를 책망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미 정답을 알고 있으니까 저런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저들이 나쁜 놈들입니까?


돈이 얼마입니까? 일년 동안 번 돈, 여러분 연봉이 얼마입니까?

그 모든 돈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아깝습니까? 아깝지 않습니까?


아깝죠.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믿음이 너무 좋으십니다.


그런데 가만히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예수님께 기름을 붓는 것이지만 너무 비생산적이지 않습니까?


연봉을 다 드리는데 무언가 남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정말 여인을 책망하는 사람들처럼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교회가 지금 예배당을 건축하는데 헌금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 이런 생각 안듭니까?


헌금을 했다면 남아 있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무엇말입니까? 예배당이라는 건물 말입니다.


예배당이라는 것이 남아 있을 있으니 헌금을 얼마든지 많이 할수 있습니다.

우리도 수십억을 들여 예배당을 짓습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 예배당을 지었고 짓습니다. 또한 지을려고 하지요.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예배당을 지으려고 합니까?

물론 땅을 많이 구입하고 건물을 크게 지으면 돈이 많이 들지요.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돈을 많이 드려 예배당을 아름답게 지으려고 하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중세예배당을 보면 어떻습니까?

얼마나 웅장하고 아름답습니까?

정말 신이 계신것 같지 않습니까?


하기야 지금은 대부분의 곳이 관광지가 되고 있지만 말입니다.


사실 예배당이 화려하게 지으지기 시작한 것은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입니다.


그저께 함께 묵상한, 돌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 뜨려 지리라는 말씀과 요한복음 4장에서 예배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하신 말씀에 근거하면 화려한 예배당이라는 것은 또 다른 우상 숭배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화려한 성전이 있음으로 얼마나 안심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 저들은 성전을 의지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보게 되면 복음에만 관심이 있었지 그 부수적인 것은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모이는 곳은 그곳에 불편하든지 편하든지 상관없이 복음이 선포되어지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자꾸 장소를 운운하고 장소가 좋은 곳을 생각하면 복음과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예배당을 짓지 말자는 말이 아닙니다.


예배당이 필요하죠. 비좁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예배당에 빼앗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배당에 마음이 빼앗기면 주님이 설자리가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예배당이 완성되면 자신의 수고와 노력의 결과물로 흐뭇해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장로나 목사들이 자신들이 지은 예배당 건물이 우상이 되어 그곳에 목을 매고 있는 것입니다. 수십억 수백억을 들어 건문을 지었으니 그것을 쉽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 한창 예배당을 짓기 위해 헌금도 해야 하고 힘을 더 불어 넣어야 하는데 제가 왜 이런 설교를 하느냐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은 그렇게 잘 지어 놓고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정말 성전이었습니다.

제사가 드려지는 곳이었습니다. 죄용서가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예배당은 그런 성전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모여 함께 말씀을 듣는 곳입니다. 함께 교제하는 곳이고요.

물론 예배도 드려지죠. 그러나 성전은 아닙니다.


성전은 주님을 믿는 주님의 백성이 성전이요, 그들의 모임이 성전입니다.

주님이 성전이지요. 주님 안에서 죄가 용서되어 집니다.


그러니 건물이 거룩하다는 것은 마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독특하게도 자꾸 눈에 보이는 것을 거룩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닙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립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의 행동은 이 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했으면 반드시 그 결과물을 내 놓아야 하는데, 일년연봉이 예수님 때문에 쓸모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이 아깝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고 아까운것 아이고 아까운것, 정말 쓸데 없는 짓을 했구나.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칭찬하시지요.


요한복음12장에 보면 가룟유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사람들이 왜 이 여인의 행위 즉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행위에 대해 무시하고 오히려 책망을 합니까?


결론은 바로 돈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서 예배당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제 설교를 듣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럴 것 같으면 예배당 짓는데 왜 헌금합니까? 나는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행동만 마찬가지로 돈을 사랑하는 전형적이 모습이지요.


여러분이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이 땅의 모든 것은 불에 타버립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실 줄로 압니다.

그러면 우리가 힘써고 정성을 다한 예배당도 어떻게 될까요?


다 불에 타 없어집니다.

그럴것 같으면 예배당 왜 짓습니까?


여러분 그런 걸 알면서 왜 좋은 집 구입해서 들어갑니까?

집도 아무곳에서나 살면 되지요. 불편하니까 그렇잖아요.


하기야 요즘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집구하는 것이 되어 버렸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 아닙니까?


불편하니 넓은 집으로 이사가는 것입니다.

그 집이 여러분의 우상이 됩니까? 안되지 않습니까?

하기야 집이 수억을 하니 우상이 되긴 하지만..


예배당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말씀배우고 기도하고 교제하기 편하기 위해 예배당을 짓는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 예배당이 영원할 것 같아서 예배당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예배당 짓는 것도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헛짓이지요.

전혀 생산적인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일 예배당 짓는 것이 여러분에게 돈이 되는 것이고 이 땅에서 부자되게 해 주는 것이고, 그 예배당이 영원할 것 같으면 전제산도 드리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 제가 말씀드린 그런 경우가 나오는 것입니다.

예배당을 신전화 시키고 자기 소유화 시키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예배당은 단지 모이는 장소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성도가 주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여인의 행동과 같이 책망받고 욕얻어 먹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사랑을 어떻게 해석하시는고 하면 자신의 장사를 미리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하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을 준비하는, 주님의 죽으심을 증거하는, 왜 주님이 죽으셔야 하는지를 증거하는 자로서 일년 년봉을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여인과 같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의 증인입니다.

믿음의 모든 선진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보기에 전혀 비생산적인 일이지만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참 성도입니다.


예배당을 짓는 것도 생산적인 투자가 아니라 주님을 증거하는 모습으로 이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배당을 우상으로, 자신의 자랑으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때 오직 십자가 지신 주님만이 자랑이요 소망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못하니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먹으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생 도움이 안돼. 그러니 죽여 버리자는 것입니다.

나의 위신을 세워주고, 내 체면을 세워주고, 내가 행한 것을 인정해 주지 않으니 죽여버리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고 불쌍한 인생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여인처럼 주님의 칭찬을 듣는 주님을 사랑하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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