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마가복음 15장33-37

푸른 섬 2007. 7. 24. 15:55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마가복음 15장33-37

 시편 22편을 먼저 보겠습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 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같이 쏟아 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찌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찌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찌어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대회 중에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에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다윗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당하시며 어떤 일을 행하실 것까지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윗의 삶이 다윗 자신의 삶이 아닙니다.

아니 다윗이 다윗 자신의 삶을 살았지 다른 삶을 살았습니까라고 질문하실지 모르지만, 물론 그는 그 자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분명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죄인을 사용하시여 장차오실 예수님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너무나 참담한 심정입니다.

다윗이 왜 이런 처지가 되었습니까? 자신의 권력에 대한 야망 때문입니까? 자신의 꿈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자 되고자 하여서 이런 상황이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죠?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셨기 때문이죠? 이 이유 때문에 다윗의 인생은 꼬인 인생이 되었고 급기에 이런 시편이 그의 입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길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않습니까?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조차 버리셨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을 정말 멀리하셨다 생각할 정도로, 자신의 신음소리조차 듣지 않으시는 상황에 부딪혔습니다.


이 상황이 어떤지 짐작도 못할 상황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 때문에,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힘든일을 당하였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기름부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원수들로부터 이런 상황으로 내 몰린 것입니다.


다윗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응답이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응답하신 일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자신은 어떤 상황입니까?

자신을 벌레, 사람의 훼방거리, 백성의 조롱거리라고 스스로 말합니다.

자신을 보는 자는 다 비웃고, 입술을 삐쭉삐쭉, 머리를 흔들며 말합니다.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다윗의 형편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짐작은 가죠.


그런데 다윗은 뭐라고 말합니까?

주님께서 자신을 모태에서 나오게 하셨고 자신이 젖을 먹을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셨다 라고 고백합니다.

놀랍지요.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자신의 하나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멀리계신 것 같고, 환난이 있고, 도울 자도 없습니다.

부르짖는 사자 같이 힘 센 자들이 자신을 둘러 있습니다.


자신은 지금 물같이 쏟아 졌고,  모든 뼈는 어그러졌고, 마음은 촛밀 같아 다 녹았고,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혀가 잇틀에 붙었다고 합니다.


악한 자들이 자신을 둘러 수족을 찔렀습니다.

자신의 뼈를 셀 수 있을 정도의 형편에 처했습니다.

겉옷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고, 완전 조롱거리가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완전히 다 잃어 버리고 자신의 몸 마져 잃어버리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런 중에서도 기도합니다.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나님께서 구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이런 경험 후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할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할 것이라고 합니다.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장차 오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런 식으로 조롱하고 비웃고 죽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예수님을 죽이시는 것을 사용하시어 이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대속제물이 되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인간들의 죄를 만천하에 드러내시는 장면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예수님을 이런 인간들을 위한 대속 제물로 받으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다윗은 단순히 자신의 고난에 대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로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대속 제물로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로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말속에 의인을 죽이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를 조롱하고 죽이는 인간들의 죄악이 포함되어 있고, 동시에 죄인들의 대속물이 되시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의 영 되시는 성령님께서는 십자가의 영으로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어떤 짓을 했는 지를 알려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죽인 그분이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해 놓으셨는지도 알게 하시지요.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모든 것은 주님 홀로 이루신 일이라고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먼저 이렇게 결론을 내려놓고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왜 이렇게 조롱받고 미움 받고, 죽음의 자리까지 나아갔는가 말입니다.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사울 때문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왕 자리를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누구에 대해서 말입니까?

다윗에 대해서.

다윗만 보면 좋은 마음 품었다가도 바로 바뀌어 다윗을 죽이려고 하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울을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심리학적으로 풀어 냅니다.

물론 엉터리죠.

정신적인 문제로 푸는 것이 아니라 죄 문제로 풀어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처음부터 왕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기어코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야 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셨지만 그 하나님을 이용해서 실제로 왕처럼 행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라이벌이 나타나니까 죽이려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자신도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무조건 다윗이 미워집니다. 이 마음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인간들입니다.

베드로나 나머지 제자, 그리고 가룟유다, 이들 속에서 사울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마음대로 안 됩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따른다고 해도 안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비웃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자리가 마치 왕의 자리인냥,  세상의 주인이 되느냥 모든 것들이 자기들 마음대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갖고 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의 본모습입니다.


그러니 이런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가 한 일은 기껏해야 예수님을 조롱하고 핍박하고 죽이는 일이었는데 예수님 홀로 구원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 찬미가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인간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은 죄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전도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되신 예수님께서 하시고, 찬미도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합류된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런 자가 천국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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