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마가복음 15장38-47

푸른 섬 2007. 7. 24. 15:57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마가복음 15장38-47                186,188

사람이 무언가를 믿을 때에는 믿을 만한 끈덕지가 있어야 믿습니다.

옛날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과거 보러 간 사이 자신은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때 그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 왔습니다.

그 어미가 그 꼴을 보니 완전 거짓꼴입니다.


그러니 자기 딸은 완전히 지금껏 헛짓 했구나 생각 하지 않겠습니까?


웃기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뉴스가 뉴스다워야 뉴스지.

그렇지 않습니까?

암행어사가 암행어사다워야 암행어사지.


사실 암행어사가 암행어사다운 것이야 그 행세를 변장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모습이 분명 암행어사의 행세중 하나인데 믿을 수가 있습니다.


그 어미의 기대는 적어도 과거 장원급제 했다면 말 타고 머리에 무엇을 써고 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거지 꼬락서니를 하고 와서 허기져 밥이나 얻어먹는 모습이니 어떻게 그를 암행어사로 보겠습니까?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인간은 자신의 기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은 예수님이 만일 정말 메시아라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적어도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신을 구원하고, 나쁜 짓 한 놈들은 모조리 없애 버려야 하는데, 그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누가 이런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그야 여러분들은 지금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잖아요 라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정말 놀라운 사실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을 본 백부장이 뭐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면 아들이 아들다워야 아들이지 하나님의 아들이 전혀 아들답지 않는 모습.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다는 사실.


누가 이 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겠습니까?

그래서 이사야 53장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이사야 52장 14절 보세요.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그러니 누가 이런 모습을 한 사람을 보고 구세주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자신을 잘 생각해 봅시다.

제가 극단적인 예를 드는 것이 아니고 사실대로 예를 듭니다.

여러분 중에 몸이 아픈 자가 있습니까?


우리의 상식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잘 믿으면 아프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까 안그렇습니까?


아파도 상관없습니다라고 하시는분 있다면 정말 믿음 좋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예수님을 잘 믿으면, 새벽기도 열심히 나가면 건강하고, 아프지 않고 집안 일들이 다 술술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이 풀리는 방식이라 여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만일 주일 예배, 저녁 예배, 수요예배, 심야 기도회, 새벽기도 등등 빠지지 않고 잘하는 데 자신의 몸에 문제가 생기고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해서 그런 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열심을 냅니다. 그 액운을 풀기 위해서. 갑자기 제가 여러분들이 듣기 거북해 하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액운말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액운이 떨어져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액운이 떨어져 나간다는 말은 모든 일들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지요.


마치 이사를 할 때에도 날을 받아서 하듯이, 그러면 집에 문제가 생기지 않고 많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사람들은 액운을 떼려고 합니다.

이것이 춘향이 어미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자신의 액운 떼어주는 사람.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방식도 액운 떼는 방식으로 신앙생활 합니다.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헌금을 많이 하든지, 기도를 많이 하든지, 예배를 열심히 참석하든지, 아니면 봉사를 열심히 하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이 부자 되기 위해서, 건강하기 위해서 헌금 많이 하고, 기도 많이 하고, 예배 열심히 드리고, 봉사 열심히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볼 때에도 액운 떼듯이 성경 말씀봅니다.


제 아내는 예수님을 잘 믿지만 장모님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면 부적을 붙여 놓았습니다.

처형 집에 가도 붙여 놓았습니다.


왜 부적을 붙입니까?


잡귀는 물러가라. 우리 집에 좋은 일만 생기고 복 달라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처형이 지금은 아기를 가졌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아기를 못 가졌습니다. 그래서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어요.


제가 작년에 갈 때에는 부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부적이 있더라고요.

어쩌면 그들은 부적 덕택에 아기가 생겼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틀림없이 마음한 구석에 그것이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나 교회 와서 액땜 하려는 모습이나 무엇이 다릅니다.


말로는 늘 십자가를 사랑한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등쳐 먹으려는 것입니다.


제가 새벽기도 열심히 오시는 여러분들에게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고 하면 새벽기도 열심히 오시든 오시지 않든 모든 인간이 다 그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잖습니까?

우리교회에서는 한분도 없으신 줄 압니다.


그러면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고 하면 마귀라는 놈이 항상 우리에게 무엇으로 미혹하는고 하면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이여,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여.


너가 부자되고 건강하고 장수하고, 자식 잘 되는 것이 십자가의 능력이여. 그래야 전도도 잘되지.

너꼬라지가 그러면 어떻게 전도가 되겠어.

예수님께서 너를 사랑하시니 너를 그렇게 만들어 주실 것이여 라고 미혹하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중국 있을 때 어떤 한국사람 한 분을 알았는데 그 사람은 5년인가 6년인가 새벽기도를 한 번도 안빠졌데요.

그것을 저에게 자랑삼아 하는데. 그래서 자신의 사업이 잘 된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잘 되지도 않았는데.


성도가 새벽 기도하는 것은 하루를 말씀 앞에서 주님께 기도하며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기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까? 히브리서에 날마다 모이기를 힘써라는 말씀이 우리속에 임하는 말씀아닙니까?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헌금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왜 헌금합니까?

주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기대하고 새벽기도하고, 헌금을 합니까? 그래서 예배에 나옵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이 아닙니까?

그러면 왜 자꾸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까요?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님상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님다움이란 자신의 기도를 다 들어 주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예수님상입니다.

자신이 필요를 다 채워주시는 예수님 상입니다.

사실 성경말씀에 입각한 예수님과 정 반대지요.


예수님은 절대 우리 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수님편이십니다.

이것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항상 자신이 주님이심을 증거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끌어당기시지 우리 자신을 위해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을 자신들 임금 삼으려고 끌어당기려고 하죠.

그러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말씀하심으로 그들을 다 돌려 보내버립니다.


너희들은 내가 택한 백성이 아니다.

그 증거물로 예수님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고방식을 들추어 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새벽에 왜 여기에 왔습니까?

말씀이 좋고 예수님이 좋고 주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생임을 아시기에 왔습니까?

아니면 내가 새벽마다 기도함으로 주님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시합해 보려고 왔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합니다.

새벽기도를 할 때마다 말씀을 들을 터이고, 기도를 할 터인데, 도대체 어떻게 된 판인지 새벽기도 많이 한 사람치고 겸손한 사람 보기 왜 그리 어렵습니까?


새벽기도 열심히 한다는 사람치고 말씀에 굴복하는 사람 잘 보지 못했습니다.

자기 이야기 하기 바쁩니다. 성경말씀은 집어 치워라고 합니다. 물론 노골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항상 자신의 행위를 앞장세웁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새벽기도 못하는 사람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고, 심지어 조롱까지 합니다.

새벽기도도 못 오는 주재에.


우리가 새벽마다 말씀 듣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 없으면 하루라도 살수 없다는 고백의 모습이 아닙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는 정말 예수님 믿는 자 다워야 합니다.

그 모습은 바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계신 우리 모두는 정말 죽으신 예수님을 보면서 참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복된 주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액뗌 하는 신앙이 아니라 삶의 모든 모습, 가난해도, 건강해도, 부유해도, 아파도, 죽을 병 들어서도,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복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런 자가 천국백성입니다. 이런 자가 바로 예수님의 고난을 제대로 아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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