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 강해 3

푸른 섬 2011. 7. 6. 22:06



정탐꾼과 기생


여호수아2장1-24


이전에 어떤 사람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말입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자기 동네에 아파트를 짓는데 그 아파트를 구입하기만 하면 값이 엄청 뛸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망하지 않았는지..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은 워낙 이런 부분에 탁월한 분들이니 귀가 솔깃하게 넘어가지 않겠지요.



그런데 만일에 한번 생각해 봅시다. -


가정을 해 보는 겁니다.



백만원을 투자해서 일 년에 천만 원을 번다면 어떻겠습니까?


이런 확실한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니 이것을 실패확율이 제로입니다. 반드시 천만 원 번다면 여러분이 백만 원을 투자하겠습니까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몇 일전에 꿈을 꾸었는데 돈을 얼마정도 투자하면 방금 언급한 이정도 되는 돈을 번다고 했습니다.


기분이 엄청 좋았습니다.



목사가 체통을 지켜야 하는데 돈을 너무 밝힙니까?



돈 싫어하는 인간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수아가 정탐꾼 두 사람을 여리고 성으로 보냅니다.



성경을 좀 아시는 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미 가나안 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 아닙니까?



사대 만에 다시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창세기15장에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이것은 그냥 들어가서 차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 아닙니까?



이제 사대 만에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백만 원 투자해서 천만 원 번다는 그것보다 더 확실한 것 아닙니까?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백만 원 투자해서 천만 원 번다는 것보다 더 확실합니까 확실하지 않습니까?



아리송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돈 이야기보다 덜 믿어집니까?


이게 인간들이지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믿어야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믿을 수 없지요.


땅을 준다고 해도 믿기 어렵지요.



그래서 약속의 땅은 별로지만 돈 되는 땅을 달라고 기도하고 믿어버리지요.


그래서 땅 투기 하고.



우리들 생각은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이제 이루어지니 그냥 그 땅을 주시면 안 됩니까?



왜 이렇게 번잡스럽게 정탐을 보내야 합니까?


왜 세상나라전쟁과 똑같이 해야 하느냐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리고성을 어떻게 접수하는지 아시지요?


정탐꾼들의 역할이 무엇이었습니까?



정탐꾼들의 역할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입니다.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세상 나라 전쟁과 같이 하는 것 같지만 정탐꾼이 정탐하고 돌아온 것은 오직 이것 밖에 없습니다.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다는 사실.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았다는 사실.



전쟁할 때 정탐꾼을 왜 보냅니까?


적의 군사가 어느 정도인지, 군량미가 어느 정도인지, 무기가 어떤지 등등을 알아 보기 위해 보내잖아요.



그런데 정탐을 보내서 확인한 일은 오직 이것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탐꾼들의 보고를 자세히 보세요.


단지 누구말만 듣고 보고를 합니까?



기생라합의 이야기만 듣고 보고를 합니다.


좀 심하지 않습니까?



여론 조사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기생 라합 이야기만 듣고 여리고 성을 여호와께서 우리 손에 붙이셨다는 보고를 합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들이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이들 정탐꾼의 보고를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아마 사형시켜버릴 것입니다.


정탐하러 보냈더니 기생이야기만 듣고 와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붙이셨다라고 보고하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기생 라합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볼까요?


9-13절입니다.


“말 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 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 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신실한 표를 내라”



물론 기생이라는 신분이 어쩌면 여론을 아는데 매우 중요했을지 모릅니다.


사극을 보면 기생이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마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 기생의 말에 여호와께서 여리고성을 자신들에게 붙이셨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야 이미 라합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한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성경을 읽으니 라합의 말과 정탐꾼의 말에 동의를 할지모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기생 라합의 말을 과연 믿을 수 있습니까?



단지 보험을 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28장18-20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어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니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주님이 되셨다는 증거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님되신 예수님이 가지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하셨을까요?


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을까요?



지금 정탐꾼을 보내는 것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정탐꾼이 확인해야 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자신들에게 붙이셨다는 사실, 다른 말로 하면 약속대로 여호와께서 이루셨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게 되니 주님의 명이 그대로 실행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당히 기분나빠할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되면 인간 주체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부정됩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니 그 능력으로 자신이, 사람이 주님의 명을 수행한다고 말해야 기분좋아합니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 같잖아요. 살 맛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만일 성령께서 주님을 전하게 하셨습니다라고 하면 자신은 부정되어 버립니다.



사도들과 제자들이 성령을 받게 되니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자동으로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짐을 제자들은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주님을 전했습니다라는 말을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과거가 있지요.


과거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했습니다.


예수님을 팔아먹고 자살해 버렸습니다.



이게 제자들의 본모습, 사도들의 본 모습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들이 이 본모습을 압니다. 자신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임을 알지요.


그래서 이들이 전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의 증거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일번 잘 받아 들려진다.


이번 비웃고 조롱한다.



몇 번일까요?



물론 여러분들은 정답을 알고 있지요?


받아 들일자와 조롱할 자들이 갈라집니다.



이들의 증거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도행전 2장7-13절입니다.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와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아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 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다 갈릴리 사람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지 알지요?


무식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외국말을 잘하는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외국말이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놀라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큰일 말함을 들었기 때문에 놀란 것입니다.



이에 반해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며 말하기를 새 술이 취하였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미쳤다는 말이지요.



이들은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 말함을 알아듣지 못했을까요?


무슨 말인지 다 알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겐 이 소리는 술주정에 불과합니다.


술 취한 사람이 지껄이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갈릴리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한 쪽은 하나님의 큰일 말하는 것으로 들리고 한쪽은 술주정으로 들리니 말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사도들의 증언이 능력 있습니까 없습니까?



일번 있다.


이번 없다.



몇 번입니까?


회개하면 있는 것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없는 것입니까?



사도들의 증언은 능력 없습니다.


이들은 단지 전할 뿐입니다. 외칠 뿐입니다.



그런데 누가 반응을 일으키십니까?



인간입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 반응을 일으키십니다.



이미 주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모두가 다 누구 손안에 있습니까?



주님 되신 예수님 손 안에 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셨을 때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이 주님이 되셨음을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기분 상당히 나쁘지요?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데 그것이 단지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확인하는 절차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성도가 복음을 전해서 그 수고로 다른 사람이 믿어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런데 사도행전2장을 보세요. 그렇게 인간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인간 부정해 버립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하는 그 인간을 부정해 버립니다.


주님이 따로 일하시지요.



단지 주님을 전하는 그들은 주님을 확인할 뿐입니다.



사도들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성령 받은 자들은 기뻐 죽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주님으로서 지금도 살아계심을 눈으로 목격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 받지 못한 자들은 상당히 기분 나쁩니다.



내가 전해서 타인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것이야 말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고, 의미 있는 삶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해서 주님이 들어 주시고 이루어주실 때 기쁘지 않습니까?


내가 철야기도 하고, 통성기도하고, 금식기도 하고, 내가 십일조 해서 주님이 들어주셔야 즐겁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홀로 주님 말씀대로 일을 진행시켜버립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못한 자들은 이런 기쁨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주님으로 지금도 주님의 일을 하시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 말입니다.



정탐꾼들이 신나게 돌아 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과 여리고성을 자신들에게 붙이셨다고 너무나 기쁘게 보고를 하지요.



이런 기쁨이 있는 자가 성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쁨이 없는 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수고를 앞장세웁니다.


주님 제가 정탐을 했지요.


제가 보고를 제대로 했지요.



저의 수고 아시지요. 저의 눈물 아시지요. 그 댓가를 주세요.


그래서 마귀가 덥석 한 아름 안겨 줍니다.



그러면 그것이 주님께서 주신 줄 알고 할렐루야 하면서 눈물 흘리고 감사헌금 듬뿍합니다.



십자가의 영을 받아 본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기생이 들려주는 하찮은 소리로 이 땅에 들려집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성도에겐 복음자체가 감사의 제목이요 찬양의 이유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세상 사람들에겐 기생의 소리에 불과하며, 술주정꾼의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도가 어떤 대우를 받을지는 뻔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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