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강해 14

푸른 섬 2011. 9. 11. 13:21

여호와께서 강퍅하게 하심이라

 

 

여호수아11장1-20

본문에 보면 연합군이 등장합니다.

10장3절에 보아도 연합군이 결성되지요.

다니엘2장43절에 보면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 나타난 금신상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이 말씀을 읽어 보면 현시대나 과거나 맞는 말 아닙니까?

인간들의 모임은 절대로 하나로 합쳐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국가 간에 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이 언제 힘을 합칩니까?

이스라엘이 등장했을 때 힘을 모읍니다.

여호수아서에 잘 나타나 있지요.

이들이 본래 힘을 합쳤다면 왜 각각의 왕들이 있겠습니까?

있을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의 등장으로 이들은 한 팀으로 뭉칩니다.

오직 그 목적은 이스라엘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시편2편1-3절을 보겠습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그 군왕들의 대표자가 누굽니까? 바로 사울 왕입니다.

사울왕은 여호와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다윗 왕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왜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받은 왕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시지요.

자신이 왕이 되고 싶어서 왕이 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왕노릇 잘하고 있는데 다윗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웠다고 하니 어떤 마음 들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마음이 어떤 마음이라고 합니까?

열방과 민족들, 군왕들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몰라요.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안다는 그 대표주자 사울 왕이 앞장서 있지요.

그러니 세상 왕들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뭔데 우리가 그의 말을 들어야 하느냐 말입니다.

나도 기름 부음 받은 자인데.

그러니 기름 부음 받은 자만 제거하면 우린 그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어떻게 합니까?

눈에 보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이지요.

물론 다윗왕은 죽을 뻔 한 경험을 했을 뿐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사도행전4장27절을 보겠습니다.

“과연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이 말씀 바로 앞에 보면 시편2편을 인용한 말씀이 나오지요.

25,2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해 연합군을 결성한 가나안 땅 왕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본모습이 제대로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단순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증거한 예수님, 참 이스라엘이시지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공격의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아들 제거만이, 이스라엘 제거만이 소원입니다.

아들과 관련되는 것은 무조건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11장20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이 말씀을 읽어 보니 여호와 하나님이 만만한 분이 아니시지요.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마음을 강퍅케 하여서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오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어떤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발람선지자를 통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민수기23장20-21절입니다.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야곱이 죄 없다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패역한 족속입니다. 그런데 허물을 보지 않으시고 패역함을 보지 않으시고 축복을 내리십니다.

이런 분이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물론 허물을 보지 않고 패역함을 보시지 않는 이유는 희생제물때문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나 가나안땅 사람이나 모두가 다 패역한 족속이고 허물 많은 자들인데 이스라엘만 허물과 패역을 보지 않으시고 축복을 내려주셨습니다.

몇 주 전에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않으시고 허물을 보지 않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축복을 받지 못한 자들은 그냥 자기들이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수아11장에 보니 이들을 여호와께서 친히 움직이십니다.

이들을 강퍅하게 하셔서 이스라엘과 대적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 자신과 싸움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시편2편에 나오는 군왕들 , 세상, 민족들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은 그들 마음속에 무조건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마음을 누가 주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여호와하나님께서 움직이셨다는 사실입니다.

헤롯, 본디오 빌라도, 이스라엘 백성들, 이들이 왜 예수님을 죽였습니까?

예수님이 싫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무조건 싫었습니다.

안 맞아요. 그래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들게 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4장28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이미 시편 2편에 나와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주되심을 전하는 것을 핍박하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

핍박하는 자들은 절대로 이것을 받아 들일 수 없지요.

이것을 받아 들인다면 성도입니다.

말씀이 믿어지니 말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자신의 자리 연연하기 바쁘지요.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 바쁩니다.

하나님의 말씀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말씀을 생각하더라도 이런 말씀이 자신에게 해당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것인데 자기가 무엇을 알아서, 무슨 능력이 있어서 이런 짓 하는 것을 피하겠습니까?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성도는 이런 자들과 한통속이 아닌가 말입니다.

성도는 처음부터 예수님이 좋았습니까?

제자들보세요. 예수님 좋아 따르지요. 그런데 모두가 다 나름대로 꿈이 있었지요.

예수님을 이용가치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마태복음20장20절 이하를 보면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합니다.

무엇을 구했습니까?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놀라운 믿음 아닙니까?

주의 나라의 임금이 예수님임을 믿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한자리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듣고 두 형제에 대해 분히 여깁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자리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복음 전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로, 죽음의 길로 내몰리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합니다.

관심은 지금껏 감추어 있던 소망, 주의 나라에서 한자리. 주의 나라를 철저하게 세상 나라와 같이 생각하고 있지요. 자기들도 지금 자신들이 무슨 마음인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

이런 마음도 누가 주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로 몰아가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면서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은 제자들의 이런 모습, 베드로의 이런 모습이 곧 헤롯왕의 모습과 동일하다고 생각지를 않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와 똑 같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자들은 뭔가 다를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나 시편2편에 나오는 군왕 속에 내가 들어가 있어요.

족속 속에 내가 들어가 있다 말입니다.

성도들도 똑같이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예정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들은 핍박받는 자로 예수님 편으로 살짝 빠지는 것 같지요.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세요.

누가 핍박을 받습니까?

예수님이 핍박을 받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사도들이 핍박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요.

십자가의 영이 이들과 함께 하기에 핍박을 받습니다.

핍박을 받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모든 인간이 죽인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는 사실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 속에는 앞서 말씀드린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천국과 지옥을 가릅니다.

주님께서 강퍅하게 하셔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전하는 자를 핍박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주되심을 담대해 전합니다.

그러니 성도들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라는 말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지요.

사망과 영생이 겹쳐져 있는 인생이 성도입니다.

지옥과 천국이 겹쳐 있는 자가 성도입니다.

십자가만 자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망만 있는 지는 십자가만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영생만 있는자도 십자가만 자랑할 수가 없겠지요. 십자가가 뭐 필요하겠습니까?

지옥을 제대로 안다고 해서 십자가만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천국을 안다고 해서 믿는다고 해서 십자가만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미 천국백성인데 십자가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철저하게 십자가 지신분이 주님이심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왕들과 거민들을 진멸합니다.

여기에서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은 가나안 거민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되면 은혜를 모르는 자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역시 이들도 멸망 받아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주께서 일을 하셨지요.

그래야만 모든 인간들을 저주 속으로 집어넣지 않겠습니까?

철저하게 십자가지신 예수님의 피공로만 자랑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가 성도입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이 십자가의 피 공로만을 거부하는 자들도 주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로마서7장24절에 나오는 말씀을 경험해 본적이 있느냐고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나님의 법을 진짜 깊이 묵상하면서 이런 마음이 들어 본적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런 마음은 모든 인간들의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은 이미 유대인들이 다 경험한 마음이지요.

이 말은 곧 모든 인간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는 뼈저린 경험을 하지 않아도 이미 말씀이 우리를 그런 자로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다 경험하려고 하는 것이 죄입니다.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성경말씀이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 말씀이 살아있지가 않아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지식적으로 믿는 것 아니냐라고 할 것입니다.

삶이 없지 않느냐고 할 것입니다. 이 말속에 이 사람의 관심은 성도의 삶에 있지 십자가에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십자가를 언급해도 마찬가지이지요.

삶이 없는 인간 어디 있나요. 모든 인간이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며 살잖아요. 성도라고 다른가요?

다르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성경말씀들이 믿어지지가 않아요.

살아 있는 말씀이 아니고 죽은 말씀이에요.

자기가 경험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람은 이것을 원해요. 내가 살아보니 정말 말씀을 묵상해 보니 나는 곤고한 사람이더라 그래서 예수님이 아니면 안되더라를 사람에게 듣고 싶은 거에요.

눈으로 보고 싶다는 것이지요. 손에 잡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 말씀이 믿어져요.

말씀을 다 인정하게 되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십자가만 자랑할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늘 겹쳐져 있다는 사실을 믿어요.

그러니 십자가만 자랑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일 조차도 주께서 조치하신 일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www.woorigarak.org 

가 교회 홈페이지 입니다. 오셔서 설교를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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