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강해 15

푸른 섬 2011. 9. 18. 13:58

멸한 왕들

여호수아12장1-24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28장18-20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읽게 되면 힘이 빠집니까 아니며 힘이 납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서 가지셨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밥을 먹지 않아도 기분 좋고 힘이 나는 말씀 아닙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별로입니까? 그저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이 별로 와 닿지가 않지요. 지금 돈 벌기 바쁘고 자식 키우기 바쁜데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

예수님께서 권세를 가지셨으면 좀 내 뜻대로 해주시면 안 되나?

내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사는데 나의 삶은 왜 이럴까?

그래서 기도도 하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고 별별 짓을 다해봅니다 마는 별 소득이 없어요.

물론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 믿고 부자 되고 건강 찾고 자식 잘되고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것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지신 권세, 즉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도대체 어떤 권세일까요?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런 권세일까요?

아니면 다른 권세일까요?

이것이 어렵다 말입니다.

분명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서 가지셨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이 땅의 권세 자들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씀 아닙니까?

마태복음26장5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에 함께 있는 자 중 하나가 검을 빼어 대 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렸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에도 얼마든지 천사들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5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래요 하시더라”

제자들 즉 사람들은 능력만 있으면 그 능력을 발휘하려고 합니다.

권세가 있으면 그 권세를 발휘하려고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습니까?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 권세와 능력을 사용하려고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능력 있으시지만 능력을 행치 않으십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어떻게 들릴까요?

에이. 거짓말 마라. 네가 능력도 없으면서 그냥 허풍떨고 있는 것 다 안다. 이런 생각이 모든 사람들의 생각 아닙니까?

요한복음18장36절에서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니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왕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허무하게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 받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십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도 조롱받으며 전혀 권세를 행세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마태복음27장40절을 보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러니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허풍쟁이입니다.

그냥 혼자 상상하는 나라. 권세를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권세와 예수님의 권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권세를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권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삼일만이 부활하셔서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며 심판주가 되시는 것이 곧 예수님의 권세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주의 행세를 영적으로 해 버리십니다.

이것이 문제 아닙니까?

사람들 눈에 확 띄게 보이도록 심판주 행세를 하시면 문제가 없는데 그 심판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아주 미래의 일, 즉 결국 없는 심판처럼 간주되어집니다.

그러니 어느 누가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다고 믿느냐 말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너무 힘빠지게 합니까?

예수님 자신이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이 예수님이 권세 없음입니까?

능력 없음입니까?

아니지요. 그렇다면 왜 권세,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습니까?

사용하셨지요. 어떻게 사용하셨습니까?

십자가 지시는 것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 바랍니까?

십자가 지는 권세 능력이 아니고 죽은 사람 살리고, 가난한자 부자 되게 하고, 억눌려 사는 인생,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는 그런 권세 능력을 바랍니다.

철저하게 눈에 보이는 육적인 것을 위해 능력과 권세를 행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런 일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능력과 권세를 행세하심이 결국 사람들의 죄악만 드러나는 꼴이 되었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에는 관심 없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들이 살길을 바랍니다. 이런 마음들을 권세를 행하심으로 제대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권세는 처음부터 인간들이 바라는 권세와 코드가 맞지 않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 아담의 후손들은 권세부리기 선수가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왕이 됩니다.

그것도 누구와 겨루어서. 바로 하나님과 겨루어서 왕이 됩니다.

첫째 아담 안에 있는 인간들의 꿈은 하나님보다 한수 위인 자기 자신을 꿈꿉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권세, 능력입니다.

권세 능력이 있으면 철저하게 자신에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3장11-18절입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 육이니라”

불을 하늘로부터 내리고,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매매를 못하게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지요.

사람들이 권세, 능력을 꿈꾸는 것은 바로 마귀의 종이기 때문에 마귀가 하는 짓을 자신들도 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겠습니까?

당연히 정복자적인 정신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말씀도 이렇게 해석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복음을 전하셨습니까?

정복자의 방식입니까 .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일을 하십니다.

마음대로 하시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십니다.

십자가의 길로 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님께서 성도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당연히 십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왜 십자가의 길을 걸을까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주님이심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심판 주이심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심판주시라는 사실은 모든 인간이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인간이 요한계시록13장에 나오는 그런 부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기분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구원받는 자가 없습니까?

있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택한 자들. 그들만은 구원을 얻습니다.

이들이 잘나서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들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예수님의 사랑만 자랑합니다.

제가 전도에 대해서 이렇게 길게 말씀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연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쳐 죽인 왕들이 이름이 나옵니다.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할 필요 있을까요?

우린 또 이 왕들을 잘 알지도 못하잖아요. 지옥갈자들을 이렇게 세세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느냐 말입니다.

그냥 대충 지옥 보내면, 즉 대출 가나안 땅에 살던 왕들은 다 죽였다. 이렇게 기록하면 안 되느냐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상세하게 죽인 왕들을 기록할까요?

그 이유를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을 , 자신의 백성들을 자신의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이들이 가는 곳마다 무엇을 전할까요?

바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십자가 복음을 좋아하는 자와 싫어하는 자가 드러나죠.

십자가 복음을 좋아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의 핍박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 일을 누가 하십니까?

심판주 되신 예수님께서 하신다는 말입니다.

성도를 사용하셔서 천국갈자와 지옥갈자가 주님 되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 심판주 되신 그분에게 있음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옥 갈자는 일일이 주님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물론 천국갈자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래서 주님되신 예수님께서 친히 지옥 보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께서 주님이심을 전하기 위해서 성도들은 주님의 증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제자를 삼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많이 전도 했다. 이런 것은 지옥갈 자들이 하는 소리가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누가 가지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가지셨죠. 그러니 누가 전도를 해요.

누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요.

인간요. 우리들 보기엔 사도바울이 그렇게 했다고 보이지요.

그런데 사도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다 은혜라고 하지 않습니까? 선물, 거저 받은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가 전도했다. 내가 증인이 되었다라는 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주님은 참으로 무서운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지옥갈자들도 일일이 방문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주되심을 제대로 보여 주십니다.

베드로 전서3장19절을 봅시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이미 죽은 자들도 방문하십니다.

이들이 누굽니까?

20절에 나오지요.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의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

22절을 보세요.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주님 되신 예수님은 이렇듯 죽은 자나 산자의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지옥갈 자들도 주님의 의해 지옥 감을, 천국 가는 자들도 주님 되신 예수님에 의해 천국 감을 주님께서 친히 전하십니다.

성도는 이 일에 사용되어지는 증인입니다.

어떤 분이 저희 교회 홈페이지에 질문을 올렸습니다.

열왕기 상13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든, 늙은 선지자든 모두가 다 여호와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심에 도구로 사용되어 질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입장에선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예언하라고 해서 예언했고,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했어 먹고 마셨는데 사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죽임당한 하나님의 사람 억울할까요 억울하지 않을까요?

억울하다 억울하지 않다가 의미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생각하는 감정일 뿐입니다.

억울하든지 억울하지 않든지 너는 말씀을 이루기 위한 도구다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늙은 선지자가 얼마나 지혜 있습니까?

자신의 죽음으로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한 번 더 확인하지 않습니까?

정말 확인죽음아닙니까?

거짓말을 해서라도 말씀은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전해야 하는 것이 주님의 백성입니다.

성도의 삶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구르든 저렇게 구르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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