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렙
여호수아 14장6--15
땅을 분배하는데 특별히 개인의 이름이 거론됩니다.
그 이름이 갈렙입니다.
갈렙이라는 사람은 에돔사람입니다. 쉽게 말하면 에서의 후손입니다.
창세기36장11절에 보면 “엘리바스의 아들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보와 가담과 그나스요”라고 나옵니다.
엘리바스는 에서의 아내 아다의 아들입니다.
갈렙은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즉 야곱의 후손이 아닙니다. 축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갈렙이 지금 땅 분배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름이 전혀 언급이 없는데 유일하게 갈렙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갈렙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아시지요?
오늘 본문에서도 잠깐 나옵니다. 6절에 보면 가데스 바네아를 언급합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민수기13장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셔서 가나안 땅을 정탐케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왜 가나안 땅을 정탐케 하셨을까요?
여러분 참으로 이상하지요. 이미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땅 상황을 다 알고 계신데 왜 정탐케 하시느냐 말입니다. 그 이유는 정탐의 결과를 보면 압니다.
각 지파의 족장 한 사람씩을 뽑습니다.
르우벤 지파에서는 삭굴의 아들 삼무아, 시므온 지파에서는 호리의 아들 사밧,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 잇사갈 지파에서는 요셉의 아들 이갈,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여호수아), 베냐민 지파에서는 라부의 아들 발디, 스불론 지파에서는 소디의 아들 갓디엘, 요셉 지파 곧 므낫세 지파에서는 수시의 아들 갓, 단 지파에서는 그말리의 아들 암미엘, 아셀 지파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둘, 납달리 지파에서는 윕시의 아들 나비, 갓 지파에서는 마기의 아들 그우엘 을 뽑았습니다.
열두 지파의 족장들입니다. 물론 레위지파는 제외되었습니다. 그래도 열두 지파이지요.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한 지파씩을 차지하고 있지요.
성경에서 이렇게 이름을 거론한 이유는 두 사람 때문이지요.
갈렙과 여호수아 때문입니다.
갈렙은 이미 유다지파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가 에돔의 후손임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의 과거가 어떻게 되었든 지금 유다지파에 속하여 족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당히 유다 지파 대표로 가나안땅 정탐에 나섭니다.
이제 열두 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살펴봅니다. 특히 정탐 중 아낙 자손에 대한 언급이 눈에 뜁니다.
아낙 자손이 오늘 본문에서 한 번 더 언급되고 있지요.
정탐꾼의 보고가 어떠합니까?
먼저 열한명의 정탐꾼은 이렇게 말합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하면서 그곳을 능히 취할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갈렙만은 우리가 올라가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길 것이다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머지 정탐꾼들은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들이 메뚜기 같은 자들이라 우리가 능히 올라가서 그들을 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들이 자신들보다 강하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누구도 포함되어 있습니까?
눈의 아들 여호수아도 포함되어 있지요.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닙니까?
우리생각에 여호수아라면 갈렙의 견해에 동의 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갈렙만이 가나안 땅을 차지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민수기32장11-12절을 봅시다.
“애굽에서 나온 자들의 이십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정녕히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순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하시고”
참으로 여호와의 평가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갈렙은 이해가 되지만 여호수아는 왜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했다고 하십니까?
분명 민수기 13장에서는 여호수아도 불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왜 온전히 순종했다고 하실까요?
갈렙을 모세를 이은 지도자로 세우면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미 모세의 후계자였습니다. 출애굽기24:13절을 보아도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갈 때 여호수아를 데리고 갑니다.
물론 출애굽기 17장9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울 때 앞장서 싸움을 합니다.
그러나 민수기 13장으로 가면 여호수아도 불순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32장에서는 여호수아를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한 자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실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불순종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봐 주시는가?
그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모세의 후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온전히 순종했다라는 말을 우리들, 사람들의 언어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갈렙의 온전한 순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배후를 늘 생각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갈렙만이 유일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순종한 자였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갈렙을 말할 때 왜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이라고 말할까요?
그나스 빼버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냥 유다 지파 갈렙이라고 해도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본 지파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꼭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이라고 한다 말입니다.
에돔 사람만이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아시겠지요?
갈렙의 존재는 곧 이스라엘 전체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사무엘 하 5장 3절을 보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
헤브론에서 다윗 왕이 칠년 육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립니다. 이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유다를 다스리지요.
물론 압살롬도 이곳에서 왕이 되어 반역을 일으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렙의 위치를 얼마나 높이 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자, 그런데 헤브론에는 누가 삽니까?
헤브론이 옛 이름은 기 럇 아르바,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이들은 과거 이스라엘 열한 지파 대표 족장들을 불순종하게 만들었던 자들 아닙니까?
두려움으로 떨게 만들었던 자들 아닙니까?
그런데 이곳은 이미 여호와께서 이곳을 갈렙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산지입니다.
발로 밟는 땅은 땅 갈렙과 갈렙 자손의 영원한 기업이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헤브론을 자신에게 달라고 합니다. 싸울 힘이 있다고 합니다.
갈렙은 헤브론을 차지했습니다.
유다지파의 기업분배는 갈렙이 어떻게 헤브론을 취했는가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 이스라엘은 얼마나 기분 나쁘겠습니까?
땅 분배조차도 이방인 갈렙을 중심으로 분배 받았으니 말입니다. 자신들의 행적은 전혀 기록되지도 않고.
누가복음5장27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의 집에서 크게 대접 받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방했습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을 비방한 것이지요.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생각은 세리나 죄인은 천국갈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자들과 상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천국갈 사람들이 어떻게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들 생각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된다. 이게 지극히 당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런 생각하지 않나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함께 하지 말아야 할 자와는 함께 하지 말아야 하지요.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어떠하다고 했습니까?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라고 하지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이런 짓 아닙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바로 시편 1편에 나오는 말씀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비방한 것이지요.
왜 당신들은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임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이 말씀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적용시키면 어떻게 됩니까?
너희들은 의원이 쓸데없다는 말이 아닙니까?
나는 너희 같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다. 나는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는 말이지요.
예수님의 말씀에 저들이 가만있을 자들이 아니지요.
세례요한을 이용합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고 기도 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십니까?
그러면서 이들이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신다고 말합니다.
자주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이 잘못되었습니까?
세례요한의 제자조차도 자주 금식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옳지 않습니까?
오히려 예수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십니다. 예수님 당신은 금식하는 것에는 관심도 없고 기도도 하지 않네요 라는 비판이지요.
바리새인들 자신들과 비교할 때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먹고 놀라 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왜하는 지 아시겠지요.
당신이나 당신의 제자들 모두 저 세리와 한 통속이라는 말입니다.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가 더 신앙생활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자주 금식하고 기도하는 바리새인들입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제자들입니까?
솔직히 말해 봅시다.
당연히 바리새인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은 맨날 놉니다. 그냥 먹고 마시고 놀아요. 죄인들과 똑 같아요. 금식하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기도하는 것도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결혼 잔치 예를 들죠.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손님을 금식 시키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신랑을 빼앗길 때 금식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성도는 금식할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성도의 신랑이시고 성도는 예수님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신랑을 빼앗길 일이 없지요.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금식, 기도 그런 종교생활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킬 때 구원을 얻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자들은 자주 금식, 기도, 헌금, 봉사, 전도, 십일조 등등을 붙들고 있지요.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습니다. 이유는 묵은 것이 좋기 때문이지요.
오래된 포도주가 비싸지 않나요? 물론 동일 품질의 포도라고 했을 경우에 말입니다.
그러니 저들은 묵은 것이 좋아요. 새포도주는 싫어요.
예수님의 이 예화는 결국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묵은 포도주를 좋다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새포도주는 싫다는 것입니다.
자주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이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주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은 누구에게로부터 나옵니까?
자기 자신에게로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구원은 예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니 어느 것이 더 좋겠습니까?
자주 금식하고 기도한다는 것은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구원받은 자들을 모두가 죄인들로서 회개케 함을 입어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어느 말이 기분이 좋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말입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말이 훨씬 듣기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인들이, 목사들이 예수님의 구원을 싫어하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좋아하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게 쉬워요. 맘에 들어요. 행복하게 해요. 만족감을 줍니다. 믿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금식하고 기도 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선교하고 별 난리를 다 떨지요. 어느 누가 새 포도주가 좋다고 하겠습니까?
묵은 포도주가 최고지요.
사람들이 왜 그리 쉽게 신앙의 행위를 좋아하고 따라 가고 그것이 옳다고 여길까요?
이유는 그것이 묵은 포도주이기 때문입니다. 진한맛이 납니다. 너무너무 맘에 들어요.
행복해져요.
그러니 이들은 예수님을 비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먹고 마시고 놀고 하는 자들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저런 자들은 지옥 가는 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레위라는 세리 집에 들어가신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이스라엘 중에 갈렙을 중심에 세워 기업을 분배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도대체 누가 기업을 주시는가? 너희들이 기업을 얻을 자격이 있는가? 너희들이 어떻게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겠되었는가?
갈렙이 있음으로 인해 자신들은 약속의 땅을 차지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요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이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리 레위 집에 들어가서 먹고 마심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사고방식을 쏙 끄집어내셨습니다.
너희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긍휼이란 없다. 너희들은 아담의 자손으로 아담처럼 독립적인 존재로 얼마든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를 끄집어내신 것입니다.
자신들이 노력하고 애쓰고 힘쓰면 얼마든지 구원 받을 자격이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예수님께서 죄인 레위 집에 가서 먹고 마심으로 드러내십니다.
오늘날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란 묵은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새 포도주. 십자가의 피를 좋아하고 그 피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항상 누구로부터 핍박을 받을까요? 묵은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습니다. 십일조 하는 사람, 헌금하는 사람, 봉사하는 사람, 전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자주 금식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지요.
그러나 성도는 항상 새포도주를 전합니다.
신랑을 자랑하고 신랑을 전하지요.
신랑과 함께 함이 즐거움이요 기쁨임을 자랑합니다. 이들이 전하는 것은,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기도도 아니요. 전도도 아니요. 금식도 아니요. 십일조, 헌금도 아닙니다.
이들은 오직 십자가의 피만을 전하고 자랑합니다.
이런 자가 바로 갈렙과 같은 자입니다.
아낙 자손들 중 가장 큰 자들, 성도는 이런 자들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이들에게 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유는 주님이 이미 십자가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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